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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이식센터 서쪽 4구역 모두 처리했습니다.”

 

 

깡통이 된 로봇들은 스파크를 튀기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비가 온 후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가만히 서 있던 여자는 그중 하나를 발로 툭 차고는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2073년 4월 22일.

 

중립적이고 원리 원칙적인 체계 설립을 위해 인공지능 정치 시스템을 도입한 지 딱 5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낱 기계들에 인간들을 판단할 권리를 주는 거냐며 일어났던 시위도 잠잠해졌고, AI를 내세운 독재 정치가 아니냐는 음모론도 사그라들었다. 시민들은 수용이라기보다는 순응을 한 상태로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인 인공지능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AI 정치 5주년을 맞아 거리 곳곳의 전광판과 TV 방송은 모두 AI 정치 관련 뉴스로 도배되었다.

 

비위 거슬릴 말도 못 하는 것들이 무슨 뉴스야. 웃기고 앉았네. 후미는 이 도시 어디서든 보일만 한 커다란 

전광판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리 1반(처리 1반은 경찰 안드로이드 훼손 및 처리 담당 1본부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유유코는 싸구려 믹스커피를 대충 휘휘 저어 후미에게 건넸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무실은 한산했다.

 

 

 “다들 주말 당직은 하기 싫어하니까요.”

 

 

유유코는 책상에 볼을 찰싹 붙이며 엎드렸다. 그러는 네가 더 싫어하잖아? 후미는 차마 섞이지 못해 떠 있는 커피 알갱이의 개수를 셌다. 처리반의 임무는 대개 경찰 안드로이드를 때려 부수고, 특이사항이 발견될 때만 본체나 부품 따위를 연구반에 전달해주는 것뿐이라 사무실에 들어오면 금세 지루해지기 일쑤다. 아무튼 

오늘은 신형도 없었고 이대로 시간 죽이다가 들어가면 그만이다.

 

 

 “후미 선배! 연구소 북쪽 3구역에 신형이래요!”

 

 

-라고 생각하던 순간에도 일이 다시 생겼다. 오늘은 이대로 끝나겠거니 싶었는데 돈이 썩어나는지 한바탕 때려죽여도 보내고 또 보내고... 레지스탕스의 활약 덕분인지 위쪽에서도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최근 들어 신형을 유독 많이 본 것 같다.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민첩해져서 '훼손 및 처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경찰'이라고 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무작위로 잡아들이는 것뿐이면서 고상한 척 AI 정치니, 공정함이니. 다 개소리지.

 

먼저 준비를 마친 루이와 함께 안드로이드 지능 발달 연구소에 도착한 후미는 구형부터 해치웠다. 카메라에 얼굴이 제대로 포착되기 전에 빠르게 전원을 차단하는 게 관건인데, 신형이 등장하면 카메라도 코어도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항상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 유독 골치 아픈 놈이라 그런지 들고 가는 것도 일이었다. 비도 와서 가뜩이나 몸도 축축 처지는데 고철 덩어리나 둘러업고 있고. 와중에 타마오의 부탁을 받아 폐기구역에 부품을 주우러 가야 한다. 토요일 오후에 이게 뭔 고생이냐 싶어 후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고물 더미 위에 놓여있는 연보라 머리의 안드로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지 멀쩡한 안드로이드가 하나도 없는 곳에서 (팔다리가 온전하게 붙어있으면 부품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쓸 수 없다) 온전한 상태의 안드로이드를 발견한 건 처음이었다.

 

 

 "왜 이렇게 깨끗한 거지? 심지어 저 외형이면... 꽤 오래된 모델일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여자 외형의 안드로이드는 제작되지 않은 지 꽤 오래였다. 인권 문제 비슷한 것도 있고, 인간형으로 만들어진 컴패니언(말동무 로봇.. 뭐 그런 거다) 혹은 가사 도우미 안드로이드는 지금같이 팍팍한 시대에는 수요가 점점 줄어들어 3년 전쯤 모두 단종되었다. 최대한 인간과 비슷하게 만든 외형과 부품 단종 덕에 유지 비용도 꽤 많이 들어 거의 다 폐기되었다고 들었는데. 2050년도 아니고 2073년에 이렇게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게 여기 왜 있는 거야...? 으. 진짜 사람 같아서 징그러워."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처음 봐요! 우리 집엔 없었거든요. 연구실에서도 못 봤고. 이거 가져가서 뜯어보면 안 되나요?“

 "연구할 게 있어? 더 생산되는 것도 아닌데."

 "가져가면 연구실 분들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재밌잖아요. 후미선배 오늘 어차피 집에 가셔도 누워만 계실 테고."

뭐? 후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일이 없는 주말엔 누워있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반박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하고요..."

 "그건 맞지. 알았어."

무거운 신형 고철 덩어리와 요청받은 부품들에 예상 못 했던 옛날 고철 덩어리까지 짐이 한가득 늘었다. 심지어 꼬질꼬질한 차림의 인간형 안드로이드라 시체를 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걸 보니 구형 모델임이 더욱 실감이 났다.

 

 

 

 

 "자세히 보니까 더 징그러운 거 같아. 쓸데없이 리얼해가지고..."

 "모델 번호 찾아보니까 컴패니언이네요. 30년은 된 모델이에요. 그리고 컴패니언은 사람처럼 만들수록 고급이었으니까요."

 "진짜 오래된 모델인데 용케도 상태가 멀쩡하네. 어쩌다 버렸을까?"

 "감당이 더 안 되니까 그랬겠죠. 오래된 모델이니까 부품도 없을 테고."

 "머리카락은 왜 이렇게 삐죽삐죽하게 했을까요? 저 시기에는 생머리가 유행이었을 것 같은데... 연보라색 머리도 그렇고."

 "폭발한 거 아닐까?"

 "폭발이요? 그건 쫌..."

전원이 꺼져있는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네 명의 대화가 사뭇 진지했다.

확인해 보니까 별문제는 없고 충전만 하면 될 것 같아. 타마오가 콧노래를 부르며 충전 준비를 하는 동안 

유유코는 머리카락을 비롯한 이런저런 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 충전 다 됐다!"

 "지금 부팅 해볼게.“

 "안녕하세요? 당신만의 동반자 CPAH-2319입니다. 저장 공간이 부족합니다. 초기화를 하시면 정상 작동이 가능합니다.“

초기화 버튼이 어디 있더라.. CPAH-2319의 목 뒤를 뒤적거리던 루이가 초기화 버튼을 찾아냈다. 고장 나서 폭발하는 거 아니냐는 후미의 염려를 뒤로하고 CPAH-2319는 정상적으로 초기화를 마쳤다. 이런저런 초기 설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2319는 컴패니언의 본분을 다하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식사는 하셨나요? 그러고 보니 맥도날드에 새로운 버거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드셔 보셨어요?"

 

 

맥도날드는 언제적 맥도날드? 없어진 지 10년은 더 된 브랜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 보면 구형 모델인 게 실감이 났다. 유유코의 말에 의하면 출시된 지 3년 후 정도가 되어서는 업데이트 지원을 안 했다고 한다. 가끔 이런 거에 관해 물으면 2319는 30분이 넘도록 그것에 대해 떠들곤 했다.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로봇을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던 걸 보면 어지간히 외로운 사람이었겠다고 후미는 생각했다.

 

 

 

 

 "...그래서 후미 선배가 당분간 2319를 맡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거의 매일 신형이 쏟아지는 마당에 연구실 창고에 자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냥 폐기하면 안돼? 에이~ 안드로이드의 살아있는 역사인데 이대로 폐기하면 섭하죠. 유유코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후미 선배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텅 비어있으니까. 당분간 부탁드릴게요. 말동무라도 해달라고 하세요."

 

정곡을 찔린 후미는 다시금 2319를 둘러업고 길을 걷게 되었다. 저번엔 시체 같더니 이번엔 납치하는 것 같은 비주얼이 되었다.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내가 범죄자 역처럼 보이긴 하지만.

 

 

 

 

2319와 후미는 꽤 즐겁게 지냈다. 처음엔 종일 떠들어대는 게 시끄럽고 지겹기도 해서 수면 모드로 돌려놨던 적도 있었는데, 막상 공백을 메우던 소리가 없어지니 적적한 것 같아 다시 켜 두었다. 타마오에게 혹시 

말을 좀 줄일 수 있는 모드가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아쉽게도 그런 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2319는 컴패니언답게 소소하게 알고 있는 게 많았다. 평상시에 사무실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가만히 누워있거나 둘 중 하나만 하던 후미는 2319와 게임도 하고 이런저런 요리도 해 먹고 그랬다.

 

2319가 이야기하는 것 중에는 영화도 있었다. 2070년이 넘어서도 유명한 몇몇 고전 영화나 이야기할 줄 

알았더니 2319가 매일매일 이야기하는 건 다른 것도 아닌 B급 공포 영화들이었다. 특히 추천하는 작품은 2048년 작품인 <금성인의 야밤 습격>이었다. 이런 것도 이 모델 기본 설정인가? 안드로이드 취향 참 고상하네. 뭐 이런 생각도 했다.

 

2319는 이따금 아이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지금은 아이돌은커녕 가수도 많이 없어서, 후미에겐 다소 생소했다. 2319의 머리 스타일이 꽤 특이했던 건 아이돌 컨셉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야 아이돌 방송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노래를 혼자서 흥얼거리곤 했다. 후미의 의사는 묻지 않고 혼자서 춤추거나 

노래할 때도 있었다. 안드로이드면서 좋아하는 걸 이야기할 때 묘하게 더 신나 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319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후미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특히 좋아했다.

 

 

 

 "너. 진짜 이름이 뭐야?"

후미가 밥을 먹는 모습을 건너편에서 지켜만 보던 2319에게 갑자기 물었다.

 "이름이요? 모델명이라면 CPAH-2319에요."

 "아니. 이름 같은 거 없어? 내 이름은 유메오지 후미니까. 그런 이름 있잖아. 영어랑 숫자로 된 거 말고."

 "저한텐 그런 게 없어요."

가지고 싶었던 이름도? 후미의 질문에 2319는 갸웃거렸다. 전 사람이 아니라서 이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2319의 말에 후미가 헛웃음을 흘렸다. 인간이 아닌 걸 모를 리가 없지. 그렇지만..

 "지금까지 CPAH-2319에게 지정된 이름 데이터를 찾아보고 있어요. 이름 지정 권한은 저에겐 없지만, 저 이름 중에선 '이치에'라는 이름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치에? 뭐. 나쁘진 않네. 오늘부터 너는 2319가 아니라 이치에야. 후미는 전 주인에게 오랜 시간 동안 뭐라고 불렸는지 새삼스레 궁금해졌으나 초기화 당했으니 알 길은 없었다.

 

 

그날 평상시와는 다르게 혼자서 출동했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다른 팀원들의 복귀가 늦어져서 신형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해 보겠다고 나갔는데, 구형이 너무 많아 해치우는 동안 얼굴이 찍혀버린 게 관건이었다. 루이가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출동했어야 했다는 후회 같은 건 구치소에서 하기엔 늦었다. 후미는 가만히 누워 그 시간을 혼자 보냈다. 평상시에 아무것도 안 하던 거랑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구치소가 처음도 아닌데 궁상맞게 쓸쓸해 하는 본인이 더 적응이 안 되었다.

 

후미는 무채색의 천장을 바라보며 이치에가 자주 부르곤 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도 가사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 노래만 계속 불렀다. 2절 시작 가사가 너의 였는지 나의 였는지 헷갈렸지만 그대로 그냥 불렀다.

 

 

 "후미 님! 오랜만이에요. 8일 하고도 13시간 4분 51초 만이네요!"

 

 

오자마자 키자마자 쨍알쨍알 시끄럽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불도 켜기 전에 이치에 상태를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미는 그 사실을 잊으려고 고개를 저었다.

 

 

 "후미 님이 자리를 비우신 동안의 소식을 불러왔어요. 4번가 모퉁이에 꽃집이 새로 생겼고요, 그 맞은편에 있던 햄버거집은 없어졌어요. 그리고 A 아파트에서 강도 사건이 있었고요. 그동안 날씨는 대부분 맑거나 

눈이 왔답니다!"

고물 안드로이드는 시간 계산 말고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대체 언제의 어디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쉴 새 없이 그 일에 대해서 또 떠들었다. 이치에가 떠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후미가 나지막하게 말을 흘렸다.

 "다 틀렸어. 이 고물아."

 

말동무조차도 제대로 되어 주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안드로이드였지만 후미는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후미의 방 남쪽에 나 있는 조그만 창문 밖에서는 허울 좋은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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