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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루기 후타바 x 하나야기 카오루코

이 세상에 봄이 사라졌다.

 이스루기 후타바는 물이 다 빠진 스니커즈를 신고 골목길을 걷는다. 세 달째 이어진 장마 탓에 골목길에서는 참기 힘든 역겨운 냄새가 났다. 후타바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녹이 슨 컨테이너 건물이나, 콘크리트가 다 깨져 깜빡이는 네온 등, 간판으로만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건물들만 즐비했다. 그리고 골목의 끝에는 「천화류」, 다 부서진 나무 명패가 매달려 있는 일본식 고택이 하나 있었다.

 

 

 “어이, 카오루코.”

 

 “어라, 후타바 항. 우산을 쓰지 않구요.”

 

 “걸리적거린다고, 그런 거. 나 감기 같은 건 안 걸리니까.”

 

 

 

 후타바가 수건을 꺼내 젖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털며 비닐 봉지를 던졌다. 후타바가 내던진 검은 비닐 봉지 안에는 가장자리가 찌그러진 통조림 두 개와 무른 과일 몇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야기 카오루코가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콱 찌푸렸다. 하지만 벌써 굶은 지 이틀 째였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갔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제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작은 방에서 물 새요, 후타바 항.”

 

 “귀찮은 일은 다 나 시킬 심산이지, 카오루코?”

 

 “흐응, 그러라고 후타바 항이 있는 거 아닌가요?”

 

 “예이, 예이. 아가씨 비위 맞춰 드리는 게 이스루기 후타바의 일이 아니겠어요.”

 

 

 대충 덧댈 나무 판자와 못, 망치 따위를 챙긴 후타바가 카오루코가 있는 큰 다다미 방을 나섰다. 관리가 안 된 다다미에서는 나무나 지푸라기의 썩은 내가 나곤 했다. 한때는 산뜻하고 건강한 나무 냄새와, 따뜻한 찻잎의 향기, 카오루코에게서 나는 벚꽃향으로 가득하던 곳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카오루코는 그 큰 방의 한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있잖아요, 후타바 항.”

 

 “…뭐야, 비 안 새잖아. 너 진짜!”

 

 “내일은 나가지 마요.”

 

 “불쌍한 척 넘어가려고 하지 말라고, 카오루코. 어차피… 내일은 안 나가니까.”

 

 “역시 후타바 항은 제 말을 잘 듣는다니까요. 상이라도 줄까요?”

 

 

 너무 작아 보였다. 실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은 철없는 아가씨, 그대로였는데도 몸집이 절반, 절반의 절반, 절반의 절반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만 같았다. 후타바는 베개도 없이 그냥 누워 있는 카오루코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 제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카오루코가 눈을 접어 웃었다. 딱 열일곱의 ‘우리’가 생각났다. 그래서 후타바는 카오루코가 웃는데 울고 싶었다. 후타바는 정말이지 이 비 냄새가 끔찍이도 싫었다. 

비는 종말을 예고하듯 영원히 내리고 있었다.

 

 

 “후타바 항은 절 배신하면 안 돼요.”

 

 “…….”

 

 “죽더라도 같이 죽어요.”

 

 

 또 쓸데없는 소릴! 후타바는 카오루코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한참 작아진 카오루코를 보고 있자면 그럴 기분조차 사라졌다. 카오루코가 얌전히 후타바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백인일수의 한 구절을 읊었다. 화려한 벚꽃 빛 바래 가도다. 꿈결같이 젊음도 바래지네. 장마 지나는 사이. 후타바는 여즉 윤기가 흐르는 카오루코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며 이 불운한 일상이 지속되길 빌었다.

 

 

 쿵쿵쿵.

 

 

 불운한 일상은 아주 쉽게 깨지는 행복이다. 새벽 일곱 시, 아침 댓바람부터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빈민가를 돌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세대들을 불시 검문하는 것은 새로 집권한 정부의 강경한 불순인자 탄압 정책 중 하나였다. 이스루기 후타바 씨! 검문 있겠습니다! 후타바가 침을 꿀꺽 삼키며 카오루코가 숨어 있는 벽장의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자꾸 귀찮게 구네! 무슨 일인데?”

 

 

 후타바가 문을 열자 제복을 말끔하게 빼 입은 단속반이 뻣뻣한 자세로 후타바를 맞이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었다.

 

 

 “이스루기 후타바 씨는 현재 301-3번지에 혼자 거주하고 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누구들 때문에 죽은 사람 기억으로 사람 들쑤실 생각이면 꺼져. 난 너희들이랑 달라.”

 

 “위증은 엄벌에 처합니다.”

 

 “꼴같잖은 예술이니 뭐니, 멀쩡히 살고 있던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린 건 너희 아냐? 이성의 승리니, 과학의 시대니, 다 관심 없어.”

 

 “위증은 엄벌에 처합니다.”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고. 죽여 버리기 전에.”

 

 “이스루기 후타바 씨는 현재 301-3번지에 혼자 거주하고 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위증은 엄벌에 처합니다.”

 

 “혼자 살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였습니다. 제 37차 검문, 질문 사항에 한치에 거짓도 없었음을 이곳에 서명하십시오.”

 

 “징그러운 새끼들. 그래, 됐냐?”

 

 “이상입니다.”

 

 

 단속반이 발을 맞춰 골목 끝으로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후타바는 카오루코를 안아 들고 벽장 안에서 꺼내 주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두 팔로 카오루코를 안아 드는 게 버거웠지만, 지금의 앙상한 카오루코는 깃털마냥 가벼웠다. 아무리 녹슨 후타바여도 카오루코 정도는 한 번에 들 수 있었다.

 

 

 “넌 어째 갈수록 살이 빠지냐.”

 

 “그래서 싫어요?”

 

 “어, 싫은데.”

 

 

 저 마른 몸은 한때는 춤을 추기도 했고, 때로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때로는 후타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랑을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후타바가 사랑했던 것은 기모노를 입고 부채를 든 채 고토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하나야기의 카오루코였다. 카오루코의 옆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들어야 하는 운명으로 나고 자랐어도, 그것이 이스루기의 운명임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한 번도 싫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후타바의 철없는 어린 주인은 언제나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후타바에게 제일 먼저 보여 줬기 때문에, 후타바는 정말로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봄은 사라졌고, 계속되는 장마가 열도를 덮쳤으며, 어느 대륙에서는 끔찍한 한파가, 어느 대륙에서는 지옥 같은 가뭄이 이어졌다. 어느 나라는 바닷물에 잠겨 사라졌고, 어느 나라는 갑자기 땅이 솟아 모든 도시가 무너졌다. 혼란 속에서 악마들이 눈을 떴다.

 

 

 “저 때문에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재미없죠?”

 

 “또 실없는 소리 할 거면 TV나 봐.”

 

 “TV에는 노래도 없고, 춤도 없고, 드라마도, 영화도,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도 재미없어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네모난 상자는 뉴스나 과학 다큐멘터리만을 끊임없이 송출해댔다.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없었다. 아름다운 것은 전부 멸종했다. 하나야기 카오루코를 제외하고는.

 

 예술은 이 사회를 좀먹고 자원을 낭비할 뿐이야. 사람들은 예술에 맘을 뺏겨 생산성을 잃고,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어. 예술은 없어져야 해. 예술인은 죽어야 해. 죽어. 죽어. 수많은 친구들이 예술을 끌어안고 죽거나, 실종됐다. 후타바는 무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후타바는 제 손으로 카오루코의 죽음을 꾸미고 장례를 치렀다. 끔찍한 열아홉이었다.

 

 

 “카오루코.”

 

 “네에, 후타바 항.”

 

 “넌 날 배신하면 안 돼.”

 

 “어라.”

 

 “넌 안 죽어.”

 

 

 내가 무슨 심정으로 너의 장례를 치렀는데. 후타바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터진 입술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는 모습이 영 꼴사나웠다. 에이씨, 쪽팔려. 후타바가 가만히 카오루코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앙상한 꽃 가지, 앙상한 나의 주인.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녹슬고 있는 게 느껴졌다. 후타바는 24시간을 카오루코를 돌보는 데에 오롯이 쏟았다. 카오루코를 이 세상에서 숨기고, 카오루코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조금이라도 덜 마르며,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게. 자신에게 보여주던 반짝임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게 하는 데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후타바 항?”

 

 

 눈앞이 새파랗다. 후타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세상이 부서지고 있었다. 인식체계가, 운동시스템이, 출력장치와, 모든 것들이.

 

 블루스크린이었다.

 

 

 

 

 

 

 죽은 사람처럼 이스루기 후타바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차가운 몸과 아무런 반응이 없는 눈동자. 하나야기 카오루코가 몇 번이나 흔들어 깨워 봤지만 LED 등이 빨갛게 점멸하며 오류를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삶에서 겪어 본 적 없는 공포감이 카오루코를 엄습했다. 주변의 모든 인간들이 「안드로이드 대반란」이라는 명목 하에 학살당할 때조차도 카오루코는 겸허했다.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면 억울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아름답게 죽여 줬으면 좋겠다고 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타바만큼은 카오루코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섯 살 무렵에 선물 받았던 ㈜이스루기의 초기 인간형 안드로이드, 후타바는 네트워크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명령을 자의로 차단했다.

 

 후타바는 카오루코를 죽이는 대신, 살리는 것을 택했다. 대반란에 대한 비밀스러운 반란이었다.

 

 

 

 ‘후타바 항은 절 배신하면 안 돼요. 죽더라도 같이 죽어요.’

 

 

 

 후타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넌 안 죽어.’

 

 

 

 후타바는 우리를 말하지 않았다.

 

 카오루코는 차갑게 식어있는 제 손끝을 감싸 쥐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안드로이드는 죽지 않는다. 어린 시절, 초기 모델인 후타바가 말썽을 부려 AS센터에 데리고 갔던 적도 서너 번 있었다. 나사를 조이고, 부품 몇 개를 갈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 후타바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웃으며 제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도 분명히 같을 것이다.

 

 

 “난 후타바 항을 배신하지 않아요.”

 

 

 카오루코가 빗물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원고: 세계정부 일본지구 도쿄도 관리자 19307

 

 피고: ㈜이스루기의 서번트파이브 여성형 C타입 005 (설정명: 후타바)

 

 

 “피고는 정부의 인간 폐기 정책에 반해, 하나야기 카오루코 씨를 5년 동안 은닉하였습니다. 인정하십니까.”

 

 “네.”

 

 “피고는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명령된 주기적 업데이트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검문에도 위증을 하였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십니까.”

 

 “엿이나 먹어, 개새끼들아.”

 

 

 피고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눈물’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판사가 눈에 띄게 동요한다. 3년 전, 대규모 안드로이드 업데이트에서 슬픔이라는 감정 표현은 삭제되었다.

 

 

 “피고에게 폐기처분을 선고합니다.”

 

 

 더 이상 인간을 닮지 않은 로봇들이 피고에게로 다가온다. 무자비한 힘으로 코어 엔진에 손을 뻗는다. 

와지끈, 우직, 부서지는 소리가 잔혹하지만 방청객들은 모두 표정이 없다. 눈물이 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전원이 멈춘다.

 

 뒤이어 인간을 닮은 로봇이 피고였던 것에 다가와 부품을 해체, 쓸만한 것들을 분별한다. 더 이상 이스루기 후타바는 존재하지 않는다.

 

 

Final log

#longlivetheus

#loveu

 

 

 기록에 남은 ㈜이스루기의 서번트파이브 여성형 C타입 005 (설정명: 후타바)의 유언이었다.

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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