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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라도 태운 건가.

 

해저터널을 빠져나와 린메이칸凛明館 구에 진입했을 때 유메오오지 시오리가 본 것은 거대한 연기의 기둥들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연기들은 그 바람에 싸우기라도 하듯 회색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세상에 저게 다 뭐람.

 

입구는 이미 경비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쳐둔 후였다. 빳빳하게 풀 먹은 흰 제복을 입은 경비부 사람들은 계속해서 차를 돌려보냈다. 욕을 하건 애원을 하건 가차없이 돌려보낸다. 경비부 직원들은 다들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일을 보았다. 바리케이드 한 켠에선 트럭을 세워둔 채 경비부 직원들과 누군가가 악을 쓰고 있었다. 화물칸에 붙은 마크를 보아하니 적십자였다. 유메오오지의 SUV가 지나가자 서로 다투던 사람 중 하나가 눈을 홀겼다. 아마 차 문의 회사 로고를 보고 그런 거겠지. 유메오오지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유메오오지의 앞에서 차 여덟 대가 차례로 되돌아갔다. 그 중 한 대는 UN 소속이었고 두 대는 경시청 차였다. 어차피 요즘처럼 돈이 말 그대로 새 주인인 시대에는 둘 다 비슷한 처지다. 이제 유메오오지의 차례다.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사원증을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비의 안색이 파래지더니 칼같이 경례를 붙이고, 차를 좌측으로 빼낸다. 워키토키 너머로 몇 마디가 오간다. 초소에서 누군가가 득달같이 뛰어나온다. 다시 한 번 경례. 그 다음엔 다시 상급자가 나오고. 그렇게 몇 번을 하고서야 그제야 수습이 된다.

 

초소 책임자는 머리가 땅에 닿을 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최대한 비굴한 태도로 그는 유메오오지에게 경비용 자동인형 셋을 붙여줬다. 인형들은 유메오오지가 타고 온 SUV의 뒷자리에 탄다. 예전이라면 유메오오지가 조수석에 타고 사람을 운전석에 태웠겠지만, 지금은 21세기 하고도 중반. 운전이란 행위 자체가 거진 필요가 없다. 위험지역이면 모를까, 사람보단 기계가 차라리 나았다.

 

모두-모두라 해야 하나?-가 착석하자 유메오오지는 괜히 룸미러로 뒤를 홀깃 보았다. 자동인형들은 다들 흰 제복 차림에 고글형 선글라스를 쓰고, 기관단총을 하나씩 들었다. 자리에 앉자 자동인형들은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메오오지는 아무도 모르게 혀를 찼다. 사람이랑 정말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긴 하다. 수백만 달러를 퍼부어 만든 녀석들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이놈의 자동인형들은 언제나 유메오오지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사람같지 않은 놈들이 사람 행세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도 흔치 않다. 한 번 더 조용히 혀를 차고 유메오오지는 브레이크를 푼다.

 

바리케이드를 넘어서고, 차는 천천히 가속하면서 린메이칸 구로 들어선다. 차는 이미 자기가 갈 곳을 안다. 미리 입력한 회담 장소를 향해 천천히 움직인다. 길거리를 둘러보니 상황은 생각보다도 더 심각하다. 길거리 곳곳의 가게들은 합판으로 창문만 막아놓고 문을 닫은 곳이 수두룩하다. 길거리엔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사람들의 눈은 흉흉하다. 네온사인들은 사방에서 번쩍대지만 그것마저도 깨져나간 곳들이 보인다. 흰색 바탕에 시크펠트 인터내셔널 마크가 문짝에 박힌 SUV를 타고 지나가는 내내 유메오오지는 몸 여기저기를 긁었다. 온 사방에서 시선이 꽂혔다. 노브를 조정해서 속도 리미트를 살짝 위로 올린다. 모터 소리가 좀 더 크게 울리더니 점차 차는 속력을 붙인다.

 

유메오오지는 눈으로 차창 너머 린메이칸의 스카이라인을 훑었다. 린메이칸 구의 스카이라인은 덩어리에 가깝다. 집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통제는 느슨하다. 도시 계획 같은 건 어느 새 뒷전으로 사라진다. 이제 건물들은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새 땅 위로 올라선다. 건물들이 서로 올라가다 어떨 땐 서로 뒤엉키고, 하나가 되고 하면서 그 자체로 생명력을 얻는다. 아차 하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린메이칸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체가 된지 오래다. 그 유기체 속에서 세속의 법, 기업의 법은 휴지조각이 된지가 오래다. 이 도시를 다스리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전임자도, 그리고 자신의 상관도 입에 달고 살던 소리였다. 아 그렇지. 상관. 린메이칸으로 출발할 때 전화를 달라고 그랬는데 까먹었다. 유메오오지는

문득 그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유키시로 아키라의 전화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삐 소리가 끝나면-

 

유키시로 선배는 바쁜 모양이다. 문자를 보내본다. 시오리에요. 린메이칸 들어가는 중이니 연락주세요. 

유메오오지는 살짝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대시보드에서 과일 맛 곡물 바를 하나 꺼내 문다. 그제서야 속이 좀 나아진다. 계기반을 본다. 15분 후면 목적지 도착이라고 한다. 유메오오지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속으로 외운다.

 

알 이즈 웰All is well. 알 이즈 웰.

 

모든 게 잘 될거야.

 

 

 

 

 

갑자기 차가 멈춰선다. 뭐지?

 

눈 앞에서 차를 가로막은 건 바리케이드다. 시크펠트 경비부에서 쌓은 건 아니고, 시위대들이 가구나 콘크리트 덩어리 등을 되는대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사람의 흔적은 없다. 지키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길이 막혔습니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갑자기 뒷자리에서 자동인형이 말한다. 완벽한 사람 목소리. 유메오오지는 얼결에 자켓 위로 팔을 쓸어내린다. 억양 없는 사람 목소리는 참으로 소름끼친다. 아니 심지어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하네. 원래 저런 기능이 있던가? 하긴 저것들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만든 물건들이 아니니까. 아니면 도쿄 한복판의 제어 센터 요원이 직접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이놈의 인형들은 죄다 블랙박스 투성이다.

 

유메오오지는 글러브박스를 연다. 벨기에제 권총이 하나. 그리고 20발 탄창이 3개. 권총은 허리춤의 홀스터에 찔러 넣고, 탄창들도 허리 반대쪽의 홀더에다 끼워 챙긴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내리면서 유메오오지는 괜히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훑어본다. 갈색 치노 팬츠. 검은 워커. 흰 바탕에 검은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 그 위에 걸친 시크펠트 인터내셔널 자켓. 어설프게 현장 나온 책상물림이요 하고 광고를 하는 수준이다. 유메오오지는 자동인형 중 아무나를 골라서 부탁한다.

 

 

길 안내 좀 해주겠어요?

 

네. 이행하겠습니다.

 

 

부탁이라 하니 이상하다. 어차피 저 것들에겐 부탁이 아니라 명령인데. 유메오오지는 다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을 밟으면서 쓴 입맛을 다신다. 그렇게 인형 하나가 앞장을 서고, 유메오오지는 그 뒤를 따른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따라 오는 인형이 하나 뿐이다. 남은 인형 하나가 차에 오른다. 어딘가로 빼내려는 모양이다. 여하간 알 수가 없어. 유메오오지는 진절머리를 친다. 승진을 해도 알 수가 없어 저것들은! 그렇게 거리를 걷는다.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바리케이드의 옆으로 돌아 골목으로 들어선다. 좌로 꺾고, 우로 꺾고. 다시 우로 꺾고. 쭉 가다가 다시 우로. 유메오오지의 가벼운 발소리. 행진이라도 하는 양 척척대는 

자동인형들의 발소리들. 반쯤 부서진 건물들 사이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반사되어 돌아오는 발소리들 뿐이다. 사람이 너무 없는걸. 유메오오지는 자꾸 홀스터에 손을 얹었다 내린다.

 

그러다 인형이 멈춘다. 유메오오지는 자신이 비좁은 건물 사이의 공터에 있음을 깨닫는다. 부서진 건물 사이로 바람이 분다. 삑. 손목에 찬 시계가 울린다. 메시지: 유키시로 아키라. 그녀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문자를 연다-

 

도망쳐.

 

그 한마디 뿐이다. 인형이 유메오오지를 돌아본다. 총구를 유메오오지에게 돌린 채. 그녀는 훈련받은 대로 최대한 재빨리 총을 뽑는다. 안전장치 푸는 소리났다. 그녀도 서둘러 안전장치를 풀고, 하늘 위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하느님, 제발 쏘는 일은 나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전 데스크워크나 하던 애라고요. 인형은 움직이지 않는다. 저 망할 고글 아래에서 눈이 뭘 보고 있을까? 모를 노릇이다.

 

 

무슨 일이야?

 

인형은 답이 없다.

 

무슨 상황이지?

 

침묵.

 

답해!

 

 

순간 뒤에 있던 인형이 유메오오지를 낚아챈다. 묵직한 팔이 그녀의 목으로 감겨오더니, 그대로 꽉 조르기 시작한다. 유메오오지는 서둘러 정지를 외치려 한다. 하지만 팔이 목을 짓누르는 쪽이 좀 더 빠르다. 인형이 팔을 들어올리자 유메오오지의 발이 바닥 위로 떠오른다. 숨이 막히면서 폐부가 쪼그라든다.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권총을 들어 올리려 하자 인형이 뒤에서 그 팔마저 잡아 누른다. 앞에 서 있던 인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눈이 흐려진다. 고글 안은 보이지 않는다. 발을 버둥댄다. 뒷꿈치로 인형의 정강이께를 차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유메오오지는 무의식적으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그리고 최대한 뒤쪽에 겨누고 당긴다.

 

귀청을 찢는 화약 소리. 인형이 비틀거린다. 팔이 살짝 느슨해지자 유메오오지는 바닥에 풀썩 떨어진다. 맞았나? 맞혔나?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기도 전에, 이번엔 옆구리 쪽에 강한 충격이 온다. 유메오오지의 몸이 붕 뜨더니 바닥을 나뒹군다. 아직도 흐릿한 눈으로 자신이 날려진 쪽을 본다. 인형의 발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아 그래. 하나가 남았지. 총. 내 총. 총이 손에 없다. 날아갈 때 놓쳤구나. 유메오오지가 바닥을 더듬대는 동안에도, 인형은 구스 스텝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인형이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밟자, 기계는 그대로 파삭 부스러진다. 유메오오지는 그제야 내지른다. 정지! 인형은 계속 걸어온다. 정지, 정지! 간신히 다시 부풀어오른 허파를 쥐어짜 보지만 인형은 계속 다가온다. 인형은 유메오오지의 코앞에 와서야 멈춘다. 명령을 들은 건가? 아니다. 인형은 천천히 기관단총을 들어 올린다. 아. 언니 말을 들을걸. 다시 눈 앞이 흐려진다. 이젠 끝장이다! 유메오오지는 눈을 감는다.

 

총성이 울린다.

 

 

 

 

 

바다 위의 바벨탑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묵직한 무언가가 나자빠지면서 땅을 울렸다. 유메오오지는 쉽사리 눈을 뜨지 못한다. 대체 어디서 총성이 들린걸까? 꺼져가던 정신이 다시 불이 붙는다. 일단 몸을 더듬어 본다. 없던 구멍이 새로 난 것 같진 않다. 유메오오지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다. 앞엔 나자빠진 인형이 하나. 관자놀이에 구멍이 하나. 그제서야 유메오오지는 고개를 들어본다. 꽤 큰 키의 여자다. 청바지에 회색 티셔츠. 구불치며 반짝이는 잿빛 금발. 자수정 색 눈동자. 미인이시네요. 목에는 카메라와 수첩. 전술조끼와 허리띠엔 파우치들이 사방에 한가득이다. 그리고 쭉 뻗은 손에는 묵지근한, 아직도 초연을 흘리는 리볼버.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아도 되지?

 

 

상쾌한 웃음이다. 유메오오지는 멍하니 있다 그제서야 아, 네, 하고 버벅댄다. 천천히 일어나 본다. 옆구리가 죽도록 아프긴 한데 그래도 심각하진 않다. 금발의 여자는 리볼버를 허리춤에 쑤셔넣고 다가온다.

 

 

괜찮아?

 

글쎄요. 아야. 인형한테 옆구리를 차여서요.

 

잠시만.

 

 

여자는 옆구리에 주렁주렁 단 파우치에서 스마트폰 사이즈의 기계를 꺼낸다. 전원을 넣자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그걸 환부에 가져다 댄다. 아. 야전용 진단기다. 실시간 X레이 모드를 켰는지 유메오오지의 갈비뼈가 보인다. 기능이 뭐가 있더라. 실시간 X레이. 혈액 분석(별도의 채혈 키트 필요). 클라우드로 실시간 환자정보 업데이트 가능. 이 모든 기능이 대당 19만 8천엔(VAT 포함). 화면을 보니 금간 곳은 없는 것 같다. 유메오오지가 빤히 쳐다보는 걸 깨달은 여자는 고개를 들고 웃는다.

 

 

왜 신문기자가 이런 거 가지고 다니는지 궁금하진 않아?

 

기자셨어요? 아니 그 이전에 뭔 기자가 리볼버를 들고 다녀요.

 

대부분은 기계에 흥미를 보이던데.

 

그거 FV-1800i잖아요.

 

잘 아네?

 

 

당연하죠. 제가 원래 그걸 팔고 다녔는걸요. 유메오오지는 속으로 쓰게 웃는다.

 

 

여하간 보듯이 금은 안 갔네.

 

감사합니다.

 

뭘.

 

여자는 웃더니 손을 내민다.

 

인사가 늦었네. 사이죠 클로딘. 메디아파르Mediapart 도쿄 특파원.

 

유메오오지 시오리에요. 시크펠트 인터내셔널.

 

 

유메오오지도 손을 내밀어 잡고 가볍게 흔든다. 사이죠는 환하게 웃더니 공터에 대고 손짓을 한다. 돌더미 사이에서 뿅, 하고 분홍색 더벅머리가 튀어나온다. 키는 꽤 작다. 허리까지 오는 더벅머리 아래에서 황금색 눈동자가 반짝댄다. 양 손을 사방으로 흔들어 제끼면서, 핑크색 머리의 여자는 슬리퍼 신은 발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나온다. 너절한 목 늘어난 옛 락밴드 티셔츠와 짧은 바지만 아니면 어디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정신 사나운 등장이다.

 

 

이쪽은 오토나시 이치에. 내 도우미라 하면 되겠네.

 

에엥, 도우미 이상이지!

 

네에 네에.

 

 

사이죠는 키득거리면서 오토나시의 더벅머리를 부빈다. 오토나시의 금빛 눈동자가 유메오오지를 보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토나시가 묻는다.

 

 

유메오오지 시오리? 시크펠트 사람이지?

 

네.

 

새 책임자야?

 

저 아세요?

 

잠시 뒤져봤지, 유메오오지 이사님. 37구 운영책임자.

 

 

어? 유메오오지의 눈이 동그래진다. 아니 공식 발표도 안 났는데 어떻게 안 거람?

 

 

지금 어떻게 알았나 궁금한 거지? 정지하라고 계속 그랬잖아? 저 깡통들은 시크펠트 간부급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면 긴급정지가 안 된다고.

 

하지만 제 직함은요?

 

아주 간단하다네, 왓슨!

 

 

가슴을 내밀면서 셜록 홈즈를 읊는 꼬락서니에 유메오오지는 폭소를 터뜨릴 뻔 했다. 도대체 뭐야 얘는? 결국은 사이죠가 끼어들었다.

 

 

네에 네에. 농담은 거기까지.

 

사이죠는 나자빠진 인형 하나를 가리킨다.

 

저거 뚫을 수 있어?

 

 

오토나시는 고개를 끄덕인다. 호주머니에서 낡아빠진 핸드폰과 한쪽 끝에 청진기같이 생긴 물건이 달린 케이블을 꺼내더니, 인형의 옆에 앉는다. 케이블을 핸드폰에 꽂더니, 청진기를 인형의 이마에 올린다. 

그제야 유메오오지는 저 둘이 뭘 하려는가를 깨닫는다.

 

 

저거라니, 저 자동인형요?

 

유메오오지는 손을 내젓는다.

 

저건 절대로 못 뚫어요. DB740 모델은 누구도 못 뚫는다고요.

 

그 말에 오토나시가 고개를 들더니 씩 웃는다.

 

뚫었는데?

 

 

유메오오지는 오토나시가 쥐고 있는 핸드폰을 급히 본다. 맙소사. 화면에 줄줄히 사항이 뜬다. 제어센터에서 본 거랑 똑 같은 통제 UI다. 기술부의 한트케한테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안 뚫릴 거라 자신을 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요. 고작 빈민가 꼬마도 한번에 뚫네요 선생님. 유메오오지가 속으로 뭐라 하건, 오토나시는 콧노래까지 부른다. 흥흥흐흐흥. 오토나아아시. 이건 도대체 뭔 멜로디인가 싶다. 사이죠도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만지작댄다.

 

 

Mon Dieu맙소사.

 

 

핸드폰을 보던 사이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자신의 핸드폰을 유메오오지에게 보여준다.

 

너 지금 실종됐어.

 

기사는 아직 속보 단계다. 린메이칸 구 운영책임자, 린메이칸 구에서 실종. 소식은 조금씩 더 들어오겠지만 아직까진 이게 전부다.

 

오우.

 

이번엔 오토나시가 휘파람을 분다.

 

무슨 일이죠?

 

유메오오지 씨 유명인사네?

 

네?

 

사살명령 나왔어.

 

 

유메오오지는 뭐라 말하려다 입이 얼어버린다. 사살? 나를? 어느 새 오토나시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정식으로 들어온 게 아닌데 이거?

 

사이죠가 묻는다. 눈은 여전히 기사를 훑으면서.

 

그러면?

 

슬쩍 끼워넣었어. 폭동 지휘부 사진에다가.

 

 

유메오오지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사이죠는 오토나시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둘이 서로 속삭인다. 대부분은 안 들리는 소리지만 그래도 단어 몇 개는 들린다. 시크펠트. 설계. 음모. 불쌍해. 사이죠는 고개를 들어 유메오오지를 본다.

 

 

일단은 널 어딘가에 숨겨야겠다.

 

 

유메오오지는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 제가 왜 숨어요. 이거 오해일 거에요.

 

오해는 무슨. 너 설계당한 거야.

 

설계는 무슨 설계에요.

 

 

유메오오지가 불퉁댄다. 사이죠는 머리를 긁는다.

 

 

왜 저 인형이 안 멈췄겠어?

 

오류일 수도 있잖아요.

 

여하간 여기 있으면 위험해.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요?

 

일단 널 오즈한테 보낼거야.

 

오즈요?

 

 

이번엔 오토나시가 고개를 내젓는다.

 

 

오즈는 시크펠트 사람 별로 안 좋아할 걸?

 

다른 방법 있어?

 

그도 그러네.

 

결정.

 

오케이!

 

 

오토나시는 엄지를 치켜들더니, 갑자기 돌더미 뒤로 뛰어간다. 낮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 호버포드? 소리가 커지더니, 돌더미 뒤에서 은색 기계가 떠오른다. 앞은 스테인리스 판으로 만든 봅슬레이 썰매를 닮았고, 그 뒤에 제트엔진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웅웅거린다. 배기구 쪽에선 불꽃은 없지만 노란 불빛이 번쩍인다. 오토나시는 포드를 몰고 둘 쪽으로 다가온다. 포드의 엔진에선 특유의 갓 베어낸 풀 냄새가 났다. 오토나시는 이번에도 엄지를 들더니 외친다.

 

타!

 

어. 이거 진짜로 타기 싫은걸요. 유메오오지는 고개를 내저으려다 간신히 참는다. 요즘의 호버포드는 지붕과 창문이 다 있고, 엔진도 전부 카울로 덮어서 깔끔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정 반대다. 앞유리 하나만 달랑 있고, 다른 롤 케이지 같은 안전설비도 없다. 동체엔 휴즈Hughes 마크가 있는데 계기판은 또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다. 엔진은 혼다고. 완전 키메라다. 그나마 의자엔 안전벨트가 있지만 그것도 어째 너절하다. 전체적으로 죄다 때와 기름 얼룩에 찌들고 구겨진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타라고!

 

 

클로딘도 같이 타!

 

됐어. 난 네온사인 사이로 곡예비행 하는 취미는 없거든.

 

 

그러더니 사이죠는 유메오오지를 번쩍 들어 의자에 앉힌다. 윽. 유메오오지는 불안한 느낌에 서둘러 안전벨트를 맨다. 다행히도 4점 안전벨트다. 벨트를 채우기가 무섭게 오토나시는 포드를 발진시킨다. 바람이 그대로 얼굴로 불어온다. 포드는 제대로 수직상승도 하지 않은 채 거칠게 날아올랐다. 포드 내의 모든 

부품들이 덜그럭대며 공포의 합주곡을 울린다. 유메오오지는 비명을 애써 참으며 콕핏 내의 조작 밸브가 아닌 것들 중 손잡이 비슷하게 생긴 건 뭐든지 잡아본다. 앞에서 오토나시는 야호! 하고 외치더니 속도를 더 낸다. 눈 옆으로 부서진 건물들의 잔상이 덩이진 채 뒤로 날아간다.

 

 

저기, 시오리!

 

네, 네!

 

 

유메오오지는 간신히 대답한다. 오토나시는 잠시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얼굴 한가득 웃는다. 유메오오지는 앞을 보라고 할 기력마저 사라졌다. 오토나시는 환하게 웃더니 소리친다.

 

린메이칸에 온 걸 환영해!

 

참으로 눈물나는 신고식이네요. 유메오오지는 쓰게 웃는다. 포드는 계속 내달린다. 린메이칸의 심장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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