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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커플링입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 하늘을 떠도는 드론들과 여기저기 쌓여있는 망가진 로봇들. 무리를 이뤄 패싸움하는 인간과 로봇. 그 사이를 분홍 머리의 어린 여자는 무섭지도 않은 듯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여자는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싸우는 소리가 거슬렸던 건지 남은 손으로 귀를 후비며 발에 걸리적거리는 로봇의 머리를 패싸움 중인 무리를 향해 찼다. 무리는 갑자기 날아온 로봇 대가리에 성질을 내며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가 누군지 확인한 무리 전원은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안녕~ 얼굴은 이미 다 읽어서 굳이 가리지 않아도 돼~ 다음부턴 조용히 해줘, 알겠지?"

여자는 손을 흔들며 무리를 지나 크고 높은 건물로 들어갔다. 제일 위층으로 올라간 여자는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수많은 컴퓨터와 모니터가 있었고 여자는 가장 가운데 컴퓨터 앞에 앉아 코드를 하나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과 연결했다.

'인식 중'

.

.

.

'인식 완료'

.

'프라우 페를레, 츠루히메 야치요'

야치요가 컴퓨터와의 인식이 완료되자 꺼져있던 모든 컴퓨터와 모니터가 주르륵 켜졌다. 야치요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익숙하게 아까 본 무리의 얼굴을 컴퓨터에 등록했다. 등록이 90%정도 진행될 때 즈음 누군가 밖에서 노크하고 들어왔다. 보라색 머리의 여자는 야치요에게 다가가 걱정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야치요, 누가 괴롭혔나요? 저 사람들이 그런 건가요? 바로 처리하고 올까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너무 시끄러워서 주의만 주려고~ 메이팡, 내가 걱정된 거야?"

 "당연하죠! 야치요는 항상 이런 일에 쉽게 말려들었잖아요!"

메이팡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야치요를 내려봤다. 야치요는 맞는 말이라며 후훗하고 웃어넘겼다. 별일 아닌 것을 확인한 메이팡은 야치요에게 그래도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고 방을 나갔다.

넓은 방에 다시 혼자가 된 야치요가 등록이 완료된 컴퓨터와의 연결을 뽑고 타자를 몇 번 두들기더니 화면에 ‘Complete’라는 글자가 떴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노크도 없이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아, 아키라 선배~ 무슨 일이신가요?”

 “프라우 페를레. 아무리 둘만 있다고 해도 호칭은 바르게 해라. 그것보다 여기 파일에 있는 놈들. 지금 바로 조사 가능한가?”

야치요는 아키라가 건네는 파일을 받아 한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과 나이뿐인 파일을 컴퓨터에 연결해 자판을 몇 번 두들기니 얼굴과 소속, 전과 등등이 뜨기 시작했다. 20명 남짓한 인간의 정보가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하자 야치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프라우 플라틴, 정부 쪽 사람들은 안 건든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죄다 정부 쪽 사람들..."

 

 "명색의 시크펠트가 보안 부분에서는 굉장히 허술하더군. 별다른 인식 작업도 없이 얼굴만 보고 이렇게 막 들여보내줘서야... 잘 자라. 자고 일어나면 여기보다 훨씬 편안한 방에서 깨어날 것이야."

 

 

아키라의 모습을 하고 있던 사람은 야치요의 목 뒤로 전기충격기를 들이댔다. 무방비 상태였던 야치요는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자리에서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야치요를 옆으로 밀어둔 아키라 모습의 사람은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야치요의 인증으로 인해 보안이 풀려있는 컴퓨터에서 조직에 관련된 중요한 자료를 전부 연결되어있는 파일 쪽으로 넘겼다. 아키라 모습의 사람은 전부 옮겨진 파일을 컴퓨터에서 흔적이 남지 않게 제거 후 야치요를 들쳐업고 유유히 방을 나섰다.

 

야치요가 사라진 걸 눈치챈 건 5시간 후였다. 밖을 나돌아다닐 땐 보고가 필수였던 시크펠트였기에 임무를 부여하려 방에 들어간 아키라는 아무 보고도 없이 사라진 야치요를 보고 바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주 잠시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기에 아키라는 비상을 걸기 전 CCTV를 먼저 확인했다. CCTV는 메이팡이 야치요의 방에 들어갔다 나온 후로의 파일이 누락되어있었다. 그 점을 확인한 아키라는 즉시 비상을 걸었고 에델을 집합 시켜 회의를 시작했다.

 

 

 "프라우 페를레가 사라졌다. 프라우 루빈, 아까 프라우 페를레 방에 들어간 듯 보였는데 이상한 낌새 느껴지는 거 없었나?"

 "제가 들어갔을 때 조직 앞에서 패싸움하던 무리가 시끄러웠다며 얼굴을 등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별거 없었습니다."

 "음... 결국 그 컴퓨터가 답인가..."

아키라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빈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야치요의 컴퓨터는 야치요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락이 걸려있으며 컴퓨터 속 프로그램 대부분 야치요가 직접 만든 것이기에 아무도 야치요의 컴퓨터를 쉽게 건들 수 없었다. 잘못 만졌다가는 지금까지 모아둔 방대한 자료를 잃는 것은 물론 야치요를 찾는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는 에델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복제 코드라도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복제 코드.... 복제 코드..."

아키라는 풀릴 생각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을 중얼거렸다. 적막만 흐르는 회의실에는 마치 산 꼭대기에서 야호라도 외친 듯 아키라의 혼잣말이 메이팡에 의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복제 코드... 아! 야치, 아니 프라우 페를레 복제 코드 있습니다! 저번에 분명 저한테 복제 코드를 어딘가에 심어두었다고 한 적이 있어요!"

메이팡은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실 떠나갈 듯 큰소리로 외쳤다.

 "오 진짜? 어디 있는지도 말해줬었어?"

 "아니요... 그건 비밀이라면서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대신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힌트를 줬었어요!"

 

 

미치루는 메이팡의 애매한 대답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키라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만 만지작거렸다. 둘의 표정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건지 파악한 메이팡도 좌절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회의실엔 한숨만 가득했다.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오리는 무언가 눈치라도 챈 듯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저... 한테 심어둔 거 아닐까요?"

 "?"

 "저번에 자가 치료할 때 알 수 없는 코드를 하나 발견했었어요. 제 프로그래밍을 프라우 페를레께서 하셨으니까 그 때 심어두신 게 아닐까 싶어서..."

시오리는 말끝을 흐리며 아키라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 아키라에 시오리는 괜한 말을 했나 앞에 놓인 서류를 괜스레 구겼다. 그러나 아키라는 자신 없는 듯한 시오리의 말투에 불만을 가졌을 뿐 시오리가 한 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키라는 미치루를 따로 구석으로 불러냈다. 또 한참을 얘기하더니 돌아온 둘은 시오리를 데리고 야치요의 방으로 향했다. 메이팡도 자연스럽게 셋을 따라갔다.

 "저... 괜찮을까요? 만약 이 코드가 복제 코드가 아니라면 프라우 페를레는..."

 "괜찮아. 지금 우리에게 방법은 없어. 만약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정은 나와 프라우 플라틴이 한 거니까 프라우 야데는 아무 잘못 없는 걸. 그러니까, 빨리 해볼까?"

 

 

시오리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코드를 집어들었다. 자신의 손목과 연결하기 전 자신의 양 옆에 서 있는 미치루와 아키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미치루랑 아키라는 눈을 맞춰주고 괜찮다며 웃어줬다. 아키라는 코드를 연결하지 못하고 울상인 시오리 대신 자신이 직접 코드를 연결해줬다.

 

 

'인식 중'

.

.

.

'인식 완료'

.

'프라우 야데, 유메오지 시오리'

 

 

코드를 연결한 순간 눈을 꾹 감은 시오리는 인식 완료되었다는 컴퓨터의 음성에 천천히 눈을 떴다. 수많은 모니터의 불빛으로 환해진 방은 시오리를 안심시켰다. 오른쪽 끝에 위치한 마지막 모니터마저 켜진 것을 확인한 시오리는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가장 큰 가운데 모니터가 멋대로 화면을 바꾸더니 어느 방을 비추었다.

 

 "시오리~ 안녕~"

 "에?"

방을 비추던 화면 속 왼쪽 구석에서 분홍 머리가 찰랑거렸다. 시오리를 두어 번 정도 더 부른 후에야 자신이 화면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프라우 페를레, 호칭. 아까도 주의 줬을 텐데."

 "아~ 아까 전기충격기때문에 목이 안 돌아가는 것 같은데~"

 "프라우 플라틴? 전기충격기는 무슨 소리일까?"

아키라는 웃으며 쳐다보는 미치루의 눈을 애써 피했다.

 "이게 무슨... 상황..."

 "아, 별 건 아니고 그냥 몰래카메라 같은 거랄까. 해킹이라면 자신 있지만 프로그래밍은 나 스스로도 영 못 믿겠어서 확인 겸 시오리가 프라우 야데의 자격이 있는지도 확인할 겸~ 뭐, 이 정도면 합격이네. 그나저나 프라우 플라틴 여기 어디인가요?"

 "임무다. 거기 어딘 지 스스로 파악하고 탈출하길. 참고로 타임어택이다. 딱 2시간 남았군. 2시간 후 어떻게 될진 알아서 생각하길. 그럼 모두 돌아가 각자의 업무를 보도록."

 "프라우 플라틴...? 진심이신가요...? 플라틴?? 아키라 선배??? 두목???????"

 

 

이미 모두가 빠져나간 야치요의 방은 모니터 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야치요의 목소리만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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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 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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