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죄가 되는 자들이 있다."
거리의 가게 진열장에 놓인 TV들이 지지직거리며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 얼굴을 들이밀며 화면을 빤히 쳐다본다. 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움찔거린다. 눈이 벌게지고 입이 열린다. 후미만이 조금 썩은 사과를 씹어먹으며 뒤에서 지켜볼 뿐이다. 점심시간, 아주 조금의 쉬는 시간 때마다 틀어지는 공익방송이다. 주변에는 무급으로 부려지는 안드로이드들이 가득하다. 도시의 지도자가 직접 녹음해놓은 연설이다.
시선이 유리에 부딪혀 불투명하게 비친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몸짓, 깔끔히 정돈된 옷차림, 일자로 잘려 꾸며진 앞머리. 백옥같은 피부.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인간이다.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설령 그것이 연출되었다고 할지라도, 믿을 대상이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인생과도 바꿀만한 것인가 보다. "에델을 믿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믿게 될 것이다.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신이라는 작자를 믿는 것과 동급 아닌가. 어떤 면에서는 저자는 더 악질적이다.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하루에도 몇 명씩 위대한 지도자의 구원을 바라며 죽어간다. 떨어지는 비 한 방울에 감복해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배를 까뒤집고 애교를 부린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건물의 모양대로 잘려나가고 전선에 나뉜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후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거리를 걸어갔다. 뒤에선 새롭게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최근 사람과 안드로이드 간의 일자리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당연하다는 반응이 68%를 넘어갔고…."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이리 변했을까. 모두가 죄인이다. 지금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사람도, 자신이 지켜보는 녀석도. 그리고 자신조차도. 그러니 후미는 의심한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시선을 눈치챈 녀석이
이동 경로를 꼬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춰 천천히 걷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후미는 그걸 뒤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속도감 있게 주변 풍경이 지나갔다. 작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도 나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얼굴을 뒤덮고, 합성수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모든 사건의 범인이 고함을 지르며 골목 사이사이를 뛰었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제기랄!"
후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드론 하나가 큰 소리를 눈치채고 저쪽 하늘에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순찰용으로 제작된 엘리시온 제 양산형 드론. 몇 초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드론은 다시 정해진 구역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골목은 다시 순간 조용해지고, 그는 칫 혀를 차더니 다시 땅을 박찼다. 쓰레기통이 걷어차였다. 넘칠 듯 담겨있던 게 균형을 잃자 쓰레기들이 하늘을 날았다. 후미는 그걸 지켜보다가 반대쪽 골목으로 달려갔다.
후미는 먼저 도착한 후 모퉁이 뒤에서 기다리다 옆구리에 일회용 전기충격기를 갈겼다. 카메라에 찍히더라도, 화면에는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랑 모자를 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순간 비틀거리는 이 녀석을 잡아 어깨동무하는 영상만 잡힐 것이다. 영상을 확인한 경찰은 코를 파며 지켜보다가 미제 사건으로 처리하리라. 인공지능이 처리할 만한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사람은 동물보다 못했다.
끝을 모르고 지르던 고함도 잦아들기 시작하고, 끊어질 것 같지 않던 말에는 숨소리가 섞였다. 후미는 제 밑에서 꿈틀거리는 사람을 밟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의 축 늘어져 무거워진 몸이 걸리적거려 밟은 상태로 체중을 싣자, 그는 단말마를 뱉으며 팔다리까지 쭉 늘어졌다. 생명이 스러져가는 소리. 그마저 꼴사납다. 어차피 범죄자의 인권 따위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 부조리가 하루 이틀인 세상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발버둥을 치던 그가 조용해지자 밤의 골목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후미는 한참을 주변에서 뒤치다꺼리다가, 한 식경 정도가 지나서야 고개를 들고 이제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드론 하나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백색 전단들을 흩날리고 있었다. 컬러로 인쇄를 하기조차 아까운지, 모두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유로운 손으로 하나를 잡아 살펴보니 내용이 시선을 끌었다. 싸구려 종이가 지조 없이 구겨졌다.
`기계공학의 혁명! 최신기술의 결정체!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두려우신가요? 자신의 등급에 절망하셨나요? 쉽고 빠르고 안전한 인조 전뇌보조연산장치 BE-324 부착 시술!`
손바닥에도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크기인 전단에는 무슨 내용이 그리도 많은지, 글자들이 빼곡하다 못해 빈자리를 비집어 들어가며 쓰여있었다. 그중에서도 구석의 작디작은 글자를 발견하고는 들여다보았다. 밤의 거리였으나 가득한 전등들로 곧 한낮처럼 볼 수가 있었다.
`*주의*시술시특별체질에한해아주낮은확률로뇌줄중혹은퇴행증상이나타날수있음을양지하여주시길바라며해당점포는시술중일어날수있는사고들에대해일체민형사상의책임을지지않음을시술자분께서는참고바랍니다.`
특별체질, 아주 낮은 확률…. 해석하기 나름인 문구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광고들. 이런 전단이 이 도시 안에서는 하루에 수천 개가 나돌아다니고 또 사라진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 광고지들을 갈매기라고 불렀다. 먼 옛날 거리를 지배하던 어느 조류의 일종이라던데, 옛날부터 모두 그렇게 불렀다. 검색으로 나온 사진으로만 봐서는 이런 새가 어떻게 거리를 지배했다는 건지 알 수도 없었으나, 그 의문점을 말하자 어머니는 그저 웃으며 세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꽤 많고, 너도 곧 깨닫게 될 거라고 하셨지. 아직은 모르겠다. 변한 게 많은 거 같은데, 정확히 뭐가 변했는지를 모르겠다. 그럼 정신은 그대로인 채로 몸만이 자란 것일까.
인기척이 없어진 지 5분째. 숨소리만이 들리고 내뱉어지는 숨에 허연 김이 서렸다. 그제야 결정이 내려졌던 것 같다. 계속하여 고민만 하던 자신을 다시 한 번 채찍질할 용기가.
골목 한구석에서 갈매기들이 불타며 매캐하게 연기를 뿜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면 널브러진 녀석이 존재했다.
"사진부터 찍고."
(사진을 첨부하겠습니다.)
(확인완료, 두 번째 조건까지 지켜준다면 약속보다 더, 15%를 보내주겠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대부업체의 인공지능에게 존댓말을 하면서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돈은 언제나 중요했다. 때로는 자존심보다도. 후미는 눈앞에서 휙휙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손짓 몇 번으로 지우고,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주머니 한쪽에서 담배를 꺼내 뻑뻑 피워댔다. 거리 곳곳에서 매연이 피어올랐으니, 작은 담배 연기 하나 추가된다고 그 광경이 이상해지지는 않았다.
"로봇이 무슨, 사람 흉내를 낸다고…."
발밑에 널브러진 그의 찢긴 피부 아래 금속 부품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세상이 이리 좋아져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니, 적당히 지랄 맞은 세상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피부를 간지럽혔다.
저 멀리서부터 골목의 경계를 말미암아 청소로봇 하나가 길거리를 더럽히는 갈매기들을 청소하고 있었다. 후미는 덜덜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걸리적거리는 갈매기들을 한 뭉텅이 걷어차고 그대로 골목을 나섰다.
계좌에 들어온 금액을 확인한다. 차오르는 숫자 몇 자리에 단순히 행복해졌다.
(연체된 금액들을 정산합니다._엘리시온 병원)
(연체된 금액들을 정산합니다._엘리시온 병원)
(연체된 금액들을….)
그리고 다시 불행해졌다. 후미는 고개를 들어 저 너머의 빌딩들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심장부가 이 밤에도 쉬지 않고 격동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도저히 넘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금속의 장벽들. 아스라이 빛나는 조명들 속에서 후미는 눈을 찌푸리고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쥐구멍을 찾아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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