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연쇄 뇌 이식 컴퓨터 해킹 사건.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없고 연결고리 또한 없는 점을 보아 제 3자가 의뢰를 받아 범죄를 저지르는 케이스로 생각된다. 따라서 딥웹을 중심으로 수사를 넓힐 예정이다. ]
수사에 외부인원입니까?
응, 아무래도 관련 전문가가 하나쯤은 있어야 속도가 나지 않겠냐는 의견이 상부를 중심으로 나와서.
신원확인도 끝났고 주변 사람들의 신상도 간략하게 조사했다고 하니까 괜찮을 거야. 나도 만났는데 괜찮았어.
민간인이 수사에 참여한다니 불안하지만……호시미 씨가 직접 확인했다면 괜찮겠죠.
텐도 씨가 그렇게 신뢰해준다니 부끄러운걸. 오후에 인사하러 온다고 했으니까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달칵. 쥰나가 문을 닫고 나감과 동시에 한숨을 뱉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신원조사를 한다고 해도 외부인을 팀에 투입하다니. 언론에 알려지면 얼마나 시끄럽게 난리를 칠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각인 걸까. 여러 불만이 머리 속을 맴돌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이제 와서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바뀌는 일은 없겠지. 그래도 호시미 씨가 확인했다고 하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마야는 생각을 정리하고 책상에 잔뜩 널릴 서류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일단 잔뜩 쌓인 서류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야는 뻣뻣한 뒷목을 주무르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곧 외부 협력자가 인사하러 온다고 했던 시간이다. 탐탁지 않은 결정이지만 같은 배를 타게 된 이상 인사는 해야 예의겠지. 기지개를 피고 방 문을 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외부 협력자는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카렌을 제외한 다른 수사관들은 이미 인사를 다 했는지 자연스레 뒤로 물러섰다. - 카렌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캐묻고 있었다. – 곧
카렌은 마야를 발견하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텐도 씨 늦었어~!
죄송해요. 서류를 정리하다가 시간을 놓쳤네요.
작게 웃으며 카렌에게 인사한 마야는 외부 협력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옆에 사회 평가 및 기본 인적 사항이 적힌 가상 창이 떴지만 무시했다. 기본적으로 경찰은 자신이 판단한 사실만 믿는 족속이니까.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금발. 투명하게 빛나는 자수정 빛 눈동자. 평균보다 큰 키. 실내에서 오래 지내는지 하얀 피부까지. 빠르게 인상을 정리한 마야는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연쇄 해킹 사건 수사팀 소속 수석 수사관 텐도 마야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술 관련 자문을 맡게 된 사이죠 클로딘입니다. 서툴더라도 잘 부탁 드립니다.
통성명이 끝난 후 쥰나가 대표로 수사 본부를 안내했다. 1층의 공유 공간과 공유 주방부터 2층의 개인 방까지 안내를 끝낸 쥰나는 서류철을 클로딘에게 건넸다.
급하게 미안. 사실 여유롭게 소개해주고 싶지만……우리도 인원이 부족해서. 혹시 괜찮다면 텐도 씨와 같이 현장에 가줄 수 있을까?
또 사건인가요? 저번 사건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요.
지원요청이야. 해킹사건으로 의심되니까 우리 쪽으로 연락을 준 모양이야. 텐도 씨가 수석 수사관이기도 하고 웬만한 자료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사이죠 씨는 별 부담 없이 기술적인 면만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괜찮을까?
물론이지. 일하기 위해서 왔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고마워. 텐도 씨도 잘 부탁할게.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둘은 본부를 나서며 쥰나가 전송해준 자료를 열어봤다. 근처 관할 사건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거리가 있는 지역이었다.
생각보다 먼 곳이네요. 혹시 운전 가능한가요?
물론이지. 하지만 이 근처는 익숙하지 않아서 헤맬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다면 내가 운전할게.
길이야 제가 옆에서 안내하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그럼 부탁 드릴게요.
Oui
걱정이 무색하게 둘은 길을 헤매는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야의 안내 솜씨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의외로 클로딘이 길을 잘 찾는 것도 한 몫 했다. 처음에 헤맬지도 모른다고 했던 건 뭐였는지,
안내가 늦어져도 여러 번 다녀본 사람인양 자연스레 길을 찾았다.
솜씨가 뛰어나시네요. 굳이 안내를 안 했어도 괜찮았겠는걸요.
설마. 안내가 없었다면 아직도 길 위에서 헤매고 있었을걸.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마야는 클로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근처 경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제지하던 경관은 곧 마야를 알아보고 경례를 올리더니 길을 터주었다. 안에서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피해자는 근처 직장에 다니는 A. 최초 발견자는 룸 셰어를 하고 있던 대학 동기 B. 평소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휴일에도 늦잠 자는 일이 없던 A가 오후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B가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B의 증언에 따르면 미동도 없이 잠들어있었다고 한다. 신고 후 A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검사 결과 뇌 내 컴퓨터 이상으로 인한 의식불명이라는 소견을 확정, 수사 본부에 연락이 갔다고 한다. 최초 발견자도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증언했다는 말을 들은 마야는 클로딘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런 사건은 외관에 특이한 점이 남지 않으니 수사하기 더 까다롭다. 전문 장비를 갖춘 병원이나 관련 업계가 와야 무언가 알아볼 수 있으니 수사관들이 기피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사이죠 씨가 있으니까 뭐라도 알아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 있으니 곧 사이죠 씨 는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 가지 나오기는 했어. 그렇지만……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가면서 지금까지 수사한 자료들 보고 모두에게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예, 물론. 그럼 가는 길에는 제가 운전할까요?
응. 부탁할게.
둘은 경관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올 때와 반대로 마야가 운전석에 앉고 클로딘이 조수석에
앉는 형태였다. 차에 타자마자 클로딘은 미리 전송 받았다는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은 평소보다 한산하고 느긋했다. 신호에 걸려 정차한 마야는 곁눈질로 클로딘을 살펴봤다.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굳게 닫힌 눈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 굳기로 유명한 경찰 상층부가
직접 자문 역할로 지명할 정도면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겠지. 또한 그 점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깊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마야는 핸들을 손 끝으로 툭툭 치며 사건 현장을 다시 떠올렸다. 그 뒤 클로딘의 애매한 표정도. 대체 뭘 발견했길래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본부로 돌아온 둘은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쥰나와 제일 먼저 마주쳤다. 어땠어? 마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 쥰나의 질문에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던 클로딘을 돌아봤다. 한참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던 클로딘은 정리가 끝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동일 범이 맞을 거야. 하지만 수사하던 사건들과 범행 수법을 틀려. 자세한 이야기는 모두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데 불러줄 수 있어?
어? 어, 응. 물론이지. 그럼 휴게실로 부를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줘.
쥰나는 서둘러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마 개인실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러 가는 거겠지. 클로딘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길게 한숨을 뱉었다. 아직 확증을 얻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가설이다. 오는 길에 분석 요청을 했으니까 늦어도 오늘 밤까지는 결과가 나오겠지만, 수사 팀한테 미리 알려줘야 맞겠지.
곧 모든 인원이 휴게실에 둘러앉았다. 이번 현장에서 뭘 발견했길래 모두를 부른 거야?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질문을 들으며 클로딘은 초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같은 범인이 저지른 범행은 맞을 거야. 하지만 수법은 여기서 수사하던 사건들과 달라. 방금 텐도씨랑 다녀온 사건은 해킹이 아니라 악성 프로그램으로 저지른 일이야. 지금까지 수사한 사건들은 모두 뇌 내 컴퓨터를 해킹해서 기억을 지우거나 가짜 기억으로 대체하는 방식이었잖아. 하지만 이번 사건은 뇌 내 컴퓨터를 아예 망가트렸어. 병원 측에 물어보니까 모든 데이터도 날아가고 컴퓨터도 사용 못 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만약 의식이 돌아와도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 일은 힘들 거라고 했지만 이건 숨겨도 상관 없겠지.
악성 프로그램에 감염되면 원격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도 있고, 이번처럼 망가트리는 일도 가능해.
이제는 보안이 철저해져서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실수로 감염된 네트워크에 접속하거나 파일을 다운받는 사이에 감염됐을 수도 있으니까.
목이 타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느새 주위 분위기는 깊게 가라앉은 채였다. 하긴, 파장이 클 이야기긴 하니까. 눈치가 빠르다면 더 중요한 점을 알아차렸을 테고. 예를 들면 얼굴이 파랗게 질린 호시미 관리관이나 텐도 수사관처럼.
만약 그런 경로로 감염된 거라면, 다수의 피해자가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잖아. 어느 네트워크가 감염되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응. 그럴지도 모르지. 최악의 경우에는 악성 프로그램에 복제 기능이 있는 거지만. 복제 기능이 있다면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갈 테고.
그렇게 되면 사이버 테러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돼.
마지막 말이 모두의 귀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다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굳어버린 탓에 휴게실 안은 침묵만 흘렀다. 가설처럼 흘러간다면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붕괴까지 갈 수 있었다.
생각한 방법이라도 있어유?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에 상부는 움직이지 않을 거여요. 말을 해도 무시하고 넘어갈 게 뻔해유.
카오루코가 초조하게 옆머리를 꼬았다 풀길 반복했다.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지금 이야기는 가설일 뿐이다. 고작 가설 따위로 상부가 움직일 리 없다는 사실은 카오루코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의 뇌 내 컴퓨터 분석 의뢰 맡겼어. 현장 네트워크도 분석 요청했고. 쓸만한 증거는 없겠지만
설득하고 백신 프로그램 만들 수 있는 정도는 될 거야. 위험성을 강조하면 겁 많은 누군가는 협조하겠지.
마지막 문장을 말한 뒤 클로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만 다들 대책을 생각하느라 바쁜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 마야를 제외하곤. 마야는 의아한 눈으로 클로딘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
분석한 결과는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그 때부터 수사팀은 각자 역할에 따라 개별 행동을 시작했다. 쥰나와 나나, 마야는 상부를 설득하기 위한 문서를 작성하고 발표 준비, 마히루와 카렌, 히카리는 피해자들의 기록을 다시 훑어보기, 카오루코와 후타바는 의심되는 사건의 조사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클로딘은 문서의 신뢰성을 위한 레퍼런스 제공과 백신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쥰나가 대표로 발표를 하는 날. 모두 휴게실 식탁에 둘러앉아 쥰나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식탁 위에는
나나가 직접 만든 쿠키와 파운드 케이크가 잔뜩. 아무래도 초조하고 긴장되면 요리를 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달칵, 현관문 열리는 소리. 타박타박 휴게실로 걸어오는 발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휴게실 문으로 집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 문이 열리고 쥰나가 들어왔다.
쥰나쨩 어땠어?!!
나나가 벌떡 일어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상한 말은 안 들었어? 괜찮아? 안절부절 못하며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마치 충직한 골든 리트리버처럼 보였다.
괜찮았어. 상부도 납득해줬고.
그래유? 거 참 의외네요. 지는 분명 트집잡구 귀찮게 굴 거라 생각했는디.
뭐……그렇긴 했지만……자기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백신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제일
먼저 달라고 요구했으니까. 사이죠 씨,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늦어도 내일이면 완성이야. 덕분에 계속 철야해서 피곤하지만.
클로딘은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요 며칠 테스트 작업을 완료하느라 무리했더니 당장이라도 잠들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다. 그래도 덕분에 완성이 목전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럼 완성되면 텐도 씨랑 같이 상부에 다녀와 줄 수 있을까? 사이죠 씨 혼자 가기에 익숙하지
않은 장소잖아.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부탁해도 될까? 텐도 마야.
물론이죠. 최근에는 저도 가지 않았던 터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잘 보조할게요.
고마워, 텐도 마야. 이래저래 신세지는 게 많네.
그 때 사이죠 씨 표정이 어땠지.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해도 하얗게 안개가 낀 것처럼 표정만 지워진다.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수사에 합류했던 걸까.
백신 프로그램이 완성된 날은 그 다음 날 이른 오후였다. 쥰나가 상부에 연락하는 사이 클로딘은 간단하게 씻고 옷을 정리했다. 마야는 클로딘의 옆에서 옷을 골라줬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요, 깔끔하게 입고 가는 편이 구설수에 안 오르고 좋아요. 충고는 덤이었다.
경찰 본부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몸수색을 하고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한 둘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백신은 상부의 설치가 끝나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본인들의 안위를 최우선순위로 두는 모습이 언제 생각해도 우스웠다. 그렇게 걱정되면 평소에 잘 처신하면 될 것을.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도착한 약속장소는 이미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드물게 경호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왔구먼, 그래서 백신은 확실하게 완성된 건가?
네. 테스트도 마쳤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클로딘은 덤덤하게 대답하고 메고 온 가방에서 컴퓨터와 칩을 꺼냈다. 그럼 뇌 내 컴퓨터에 접속해서
백신 설치를 진행하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주의사항과 혹시 어지럼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를 덧붙이며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곧 클로딘은 노트북에서 사람들로 시선을 돌렸다.
설치 완료 되었습니다. 혹시 이상이 느껴지십니까?
아니, 아무렇지도 않네…..?!
클로딘과 가장 가까이 서있던 사람이 쓰러지는 걸 시작으로 차례차례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마야는 다급이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호흡도 맥박도 정상, 하지만 의식은 없다.
쓰러지기 전까지 어떠한 징후도 없었고 병이 있었다 한들 이렇게 한 순간에 모두가 쓰러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체 어떤 일로? 잔뜩 당황한 마야의 뒤에서 클로딘이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저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시면 될 것 같네요, 텐도 수석 수사관님.
……사이죠 씨, 이게 대체 무슨. 범인의 사주를 받은 일인가요?
음, 아뇨. 사주를 받을 것도 없이 제가 모든 일의 범인인걸요. 이것도 미리 계획했던 일이에요.
그러니까 수사관님이 절 체포하시면 돼요. 자세한 이야기는 취조실에서 해도 괜찮죠?
허망한 표정의 마야와 반대로 클로딘의 표정은 아주 밝고 개운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을 끝낸 사람처럼.
[ “동기, 말인가요. 아, 아뇨. 제일 처음 물어볼 거라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예상이 맞아서 놀란 것뿐이니까 괜찮아요. 동기, 동기라……”
피의자는 몇 분인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집중했다. 말을 정리하는지 중간중간 입을 열었다 닫길 반복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목적인 상부 사람들이었어요. 그걸 위해서 연쇄 해킹 사건을 시작한 거고. 좀 떠들석해야 움직이기 편하잖아요. 불안감도 같이 커져야 했고. 응? 다른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았냐고? 음……별로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어차피 예상한 대로 다른 피해자들은 의뢰를 받아서 정했어요.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처지가 된 건데, 굳이 신경 쓸 이유는 없죠. 무고한 피해자라고 할 사람은 그, 제가 수사팀 합류하자마자 지원 나갔던 사건 정도일까. 그래서 그 피해자는 무사히 의식도 돌아왔고 사회 복귀도 했잖아요.”
“왜 상부 사람들이 목적이었냐니. 뻔한 질문이네요. 복수를 위해서지. 예전에 상부가 사건 하나를 덮기 위해 교통 사고를 사주한 적이 있어요. 나랑 내 가족은 거기에 운 없이 휘말렸고. 내가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머리를 크게 다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지.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머리에 문제가 생겼고.”
여기까지 말한 후 피의자는 짧게 웃었다. 물을 마시고 말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의외로 침착했다.
“내가 한 일도 마치 소설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기억이 아니라 지식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까. 내 기억이지만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거죠. 마치 책에서 읽은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원인을 찾아보니 사건 당시 충격으로 뇌 내 컴퓨터에 이상이 생겼고, 그 탓에 뇌에도 영향이 미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고치고 싶어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뒤로 쭉 그렇게 살았지.”
어떤 기억도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외롭고 힘들어요.
“한창 공부하던 때 장난으로 경찰 상부의 컴퓨터를 해킹한 적 있어요. 그냥 간단하게 건들기만 했지만.
그러다 우연히 대충 삭제된 파일을 열어봤고, 사고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그 때부터 복수를 계획했어요. 이게 전부.”
심문을 담당한 텐도 수사관이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결코 좋은 표정을 아니었을 거라 추측만 할 뿐. 아닌 척해도 내심 사이죠 씨를 인정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다들 깨어날 거예요. 일주일 정도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론 깨어난 뒤에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네요. 컴퓨터도 망가졌을 거고 기억도 다 날아갔을 테니까. 후유증도 남을 테고. 지금까지 저질렀던 악행의 피해자들이 어떤 기분일지 실컷 느낄 수 있겠죠.”
그 후 심문은 평탄하게 흘러갔다. 피의자는 아무런 저항 없이 모든 질문에 답을 했고, 며칠 뒤 감옥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이 기록도 멋대로 작성한 것이다. 만약 들키면 폐기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사건의 범인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 할 테니까.
사람은 기억으로 완성되는 존재다. 피의자는 모든 기억이 실감 나지 않고 그저 책 구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단순한 문자의 나열 또는 지식일 뿐이라고. 어떤 삶일지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삶은 과연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
- 연쇄 해킹 사건 마무리 보고서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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