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조직 『프론티어』가 창설되기까지의 이야기.
“찾았어?”
“아직! 하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다행이야. 그 아이들이라면 우리의 목표에 적합할 테니까.”
“부품 쪽은?”
“그쪽은 곧 답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알겠어. 다시 나갔다 올게, 상어 씨!”
“응. 수고해줘. 래빗.”
어느 건물에서 벗어난 미소라와 아루루는 각자의 신체를 돌리거나 쭉 펴면서 찌뿌둥한 근육을 풀었다.
어두운 곳에서 몇 안 되는 전등에 온 신경을 쏟고 오니 온몸이 뻐근했다. 무의식중에 어깨를 짚었다 뗀
아루루가 손에 묻은 진득한 액체를 옷에 슥슥 닦았다.
“그거 또 손댔어?”
“응.”
“정말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를 못한다니까.”
미소라는 여전히 미끌거리는 아루루의 손을 붙잡고 뒷주머니에 쑤셔져 있던 손수건을 꺼내 기름을 닦아주며 불평했다.
“여기 의사는 실력은 좋은데 뭘 쓰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잘 고쳐주니까 된 거 아닐까?”
“그건 그렇지만 좀 불안하잖아.”
“미소라는 걱정이 많다니까!”
쾌활하게 웃은 아루루는 윤활유가 덕지덕지 묻은 관절부를 보여주듯 빙글 돌렸다. 기계로 된 팔꿈치는
부딪히는 소리 없이 매끈하게 돌아갔다. 그가 만족했으면 된 거다. 미소라는 어쩔 수 없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미소라가 말했다.
“아까 못 주운 고물을 주우러 가-”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둘의 귀를 찔렀다. 틀림없는 인간의 소리였다. 미소라와 아루루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리가 난 골목으로 튀어 나갔다. 비명은 한 번 들리고 멈췄다. 미소라는 큰일이 벌어졌을까 기계로 된 다리에 속도를 더 올려 아루루를 제쳤다.
“먼저 가 있을게!”
정말로 사건이 벌어졌다면 뒤따라오는 아루루에게 신고를 부탁하고 자신은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미소라는 손수건을 꺼냈다가 질척한 느낌에 이마를 탁 쳤다. 응급처치는 내 옷으로 해야겠네. 많이 헤지고 더러워졌지만, 목숨에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소라의 눈앞엔 분홍빛 작은 토끼가 있었다.
“허억, 허억... 미소라-...”
몇 발짝 뒤늦게 온 아루루도 헉헉대며 고개를 들었다가 분홍색 토끼를 보았다. 귀여운 볼살, 꼿꼿이 솟아있는 귀,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거대한 망치는 너무나도 커서 저절로 그걸 든 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토끼 인간?”
“나는 래빗! 뒷골목을 수호하는 토끼 경찰! 너희들은 누구지?”
됐다. 예상대로다. 상어가 점찍어둔 아이들은 래빗의 작전에 보란 듯이 걸려들었다.
자신을 경찰이라 밝힌 래빗은 대답이 없자 어깨에 둘러멨던 망치를 한 번 휘두르곤 덫에 걸린 아이들을 향해 겨눴다. 그러자 그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양팔을 올리며 답한다.
“저, 저는 미소라구요.”
“난 아루루!”
미소라와 아루루. 가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특이 케이스다. 이 뒷골목에선 가명을 쓰는 게 안전할 텐데. 아니면 가명 따위는 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라는 건가?
“너희는 왜 가명을 안 쓰는 거야?”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대답에 따라 이 망치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난 내 이름이 좋은걸! 꼭 있어야 한다면 쓰겠지만.”
“가명을 못 정했기도 하구요...”
래빗은 망치를 거둬 다시 어깨 위로 둘러멨다. 크기에 비해 가볍게 돌아가자 아이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이건 우리 편이 확실해졌을 때 말해도 괜찮다. 래빗은 입이 근질근질했으나 지금은 일을 마무리 짓는 것으로 집중을 돌렸다.
무언가가 부서져 쌓인 돌무더기 위에 서 있던 래빗은 아래로 펄쩍 뛰어 내려와 바닥에 누워있던 여성에게 손을 뻗었다.
“다친 데는 없지? 요즘은 사악한 악당들이 많아서 조심해야 해. 방금 있던 악당들은 아직 내 친구가 되지 않아서 말이야. 친구가 되면 너에게 사과하라고 해 둘게. 여기서 왼쪽 골목으로 나가면 안전할 거야.”
“아, 가, 감사합니다... 사과는 괜찮습니다...”
이 사람은 래빗과 상어가 작전을 꾸밀 때마다 고용하는 A.I.배우였다. 일이 끝나면 즉시 사라지는 게 장점이라 지금도 래빗의 손을 잡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골목으로 돌아 사라졌다. 그 골목에는 그를 위한 보수가 있다. 그 사정을 모르는 저 둘은 얼빠진 얼굴로 있을 뿐이다.
“벌써 사라졌네. 다치지는 않았나 봐.”
“저기... 저 사람은 괜찮은 건가요? 아까 비명을 지르셨는데.”
“괜찮아.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 토끼 경찰, 래빗이 잘 해결했으니까!”
래빗은 제 심장 부근을 주먹으로 툭 치고 발끝으로 방금까지 서 있던 돌무더기를 툭툭 찼다. 그러자 벽이 부서진 잔해 밑에서 사람이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에 귀 내부에 설치된 초소형 이어폰에서 상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확인했어. 수고했어. 곧 폴리스가 갈 거야.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알려줄게.]
임무 확인 알림을 받은 상어가 래빗의 오른눈에 지도를 띄웠다. 현 위치에서 깜박이던 빨간색 토끼 모양 얼굴이 이내 적당한 속도로 움직여 길을 알린다. 래빗은 지도를 따라 앞장섰다.
“너희를 데려갈 곳이 있어. 빨리 가자. 경찰과 엮이는 건 너희도 싫잖아?”
그 시각, 상어는 은은한 연주황색으로 인테리어 된 고급스러운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의 건너편에는 이 집의 주인이자 나라를 주름잡는 부품회사의 후계자,
에비스 츠카사가 마주 앉아 잔을 들고 있다.
“찾아왔다는 건 다 모였다는 거겠네?”
“맞아. 마지막은 당신이야. 어떻게 하겠어?”
츠카사는 한 모금 마신 찻잔을 내려놓고는 상체를 뒤로 기댔다. 눈앞의 상어는 이전에도 찾아와 뜻을 밝히고 함께 하겠냐 물었었다. 그때는 불확실함에 기대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었지. 자신은 이 나라의
모든 기계 부품을 취급하는 기업의 후계자. 이제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여야 했다.
그렇기에 지난번, 츠카사는 상어와 약속을 했다. 모든 인원이 완벽하게 모였을 때 참가하겠다, 내 이익은 확실히 보장해달라. 상어는 약속을 잘 하지 않지만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찾아왔다는 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리라.
“참가하겠어. 당신의 계획.”
“그럴 줄 알았어. 고마워.”
상어는 웃으며 남은 차를 목으로 넘겼다. 오른눈을 감고 왼쪽 관자놀이를 툭 치면 자신의 보금자리에
설치해둔 CCTV 영상이 자신만 보이게 펼쳐진다. 래빗과 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계약서를 쓰러 갈까.”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안에 있는 건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
래빗이 방방 뛰어 상어 품에 와락 안겼다. 상어의 보금자리는 수많은 모니터의 빛 때문에 푸른색으로
빛났다. 모두가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다들 내 집에 온 걸 환영해.”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상어였다. 그는 서랍에서 5개의 태블릿을 꺼내와 각자의 앞에 두었다.
“자기소개부터 해볼까? 나는 상어야. 존재하는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이지.
웬만한 정보는 전부 내 손에 있어.”
“나는 래빗! 뒷골목의 치안 담당이야. 사건이 벌어지면 저 망치로 해결하고 있어.”
“나는 이 나라의 모든 기계 부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후계자, 에비스 츠카사야. 너희들의 팔과 다리에도 우리 회사 부품이 있겠네.”
츠카사가 손가락으로 아루루의 팔과 미소라의 다리를 가리켰다. 그렇게 자기소개의 순서는 넘어간다.
정말 해도 될까, 머뭇대던 미소라를 놔두고 아루루가 먼저 팔을 번쩍 들었다.
“저는 오츠키 아루루! 쓰레기산에서 쓸만한 부품을 주워 팔고 있어요!”
“아, 아루루! 이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갑자기 말을 하면 어떡해!”
“그렇지만 저기 높은 사람도 있는걸?”
“아... 저, 저는 카노 미소라구요. 아루루와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미소라까지 자기소개가 끝나자 래빗이 와아, 하며 손뼉을 쳤다. 몸이 조금씩 들썩거리는 걸 보니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번갈아서 흔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래빗의 박수가 끝나자 상어가 자신의 태블릿을 켜 몇 번 정도 화면을 눌렀다. 그 순간 모두의 태블릿이 켜지고 무언가를 띄웠다.
“상황 설명 없이 온 사람들도 있으니까 다시 한번 말할게. 그 앞의 계획서를 보면서 들어도 돼. ...조직을 하나 만들려고 해.”
운을 띄운 상어가 이은 말은 이랬다. 현재 정부 쪽에서 자신의 정보 수집을 방해하고 있어 쓸만한 정보가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전까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들을 모은 게 지금 이 자리라고 했다. 이 자리는 비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 꾸렸으나 서로의
이익도 극대화하게끔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증거로는 태블릿에 뜬 계약서. 이익? 중얼거리는 아루루에게 래빗이 답했다.
“난 여기에 참가해서 상어가 감시하고 있는 뒷골목의 모든 CCTV를 받기로 했어.”
비전 기능이 있는 안구거든. 자신의 오른눈을 가리키던 래빗은 어느새 상어의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상어는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미소라가 고개를 갸웃대자 상어가 츠카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루루는 태블릿의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보는 중이었다.
“나는 치고 올라오는 라이벌 회사들의 침몰을 보장받기로 했어.”
설명을 들으며 화면을 보던 미소라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상어의 말대로라면 이 조직에 이름을 넣는 순간 반역 세력이 된다. 조직원들은 보상을 받는 대신 그만큼의 일을 해야겠지. 래빗은 무력으로 사태를 벌이거나 제압할 거고 츠카사는 상어와 협력해 해킹이 가능한 기계장치를 판매할 것이다. 부정부패를
돌이킬 수 없어 몇몇 기업이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국가기관은 존재했다.
이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다 자신들이 무슨 능력이 있어 여기에 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 사이에 껴있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들의 수준에 걸맞은 뭔가 대단한 것이 자신들에게는 없었다. 나라를 주름잡는 기계상의 후계자, 경찰이라곤 하지만 누가 봐도 깡패로 보이는 이상한 토끼 가면, 그리고 예상대로라면 자신들의 사생활까지 전부 알고 있을, 뒷세계의 해커. 이들을 잘못 건드리면 이 자리에서 사회적으로 존재가 말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미소라는 슬며시 고개와 함께 손을 들었다.
“저희는 그... 조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만한 힘이 없어요. 원하는 것도 없구요. 다른 사람을 찾아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이럴 때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빠르게 빠져야 한다. 조용히 잘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미소라는 옆에서 태블릿에 뭔가를 적고 있는 아루루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아루루, 가자.”
“응?”
아루루가 따라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상어가 자신의 태블릿을 들어 미소라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네 친구는 이미 사인했는데.”
“네?”
“정말이야. 확인해볼래?”
미소라는 서둘러 아루루의 화면을 보았다. 서명란에 제 친구의 필체로 ‘아루루’라는 글자가 온갖 그림과 함께 적혀 있었다. 미소라가 고개를 확 돌려 아루루를 바라보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읽어보니까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어서 사인했는데. 안 되는 거였어?”
“너 저게 뭔 줄 알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게 될 줄 알고...!”
당황한 미소라를 진정시킨 건 츠카사였다. 그는 특유의 편안한 말투로 미소라에게 추가 설명을 했다.
“상어는 너희에게 어려운 걸 시키진 않을 거야. 나와 래빗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만 너희들은 아까까지도 고물을 주워 내다 팔던 ‘평범한’ 사람이잖아? 상어는 그런 비슷한 걸 시키겠지. 과도한 걸 주문하지는 않아.”
“맞아. 나는 너희들이 그저 내 초소형 드론이 보지 못하는 곳이나 해킹하지 못하는 곳을 정탐해주었으면 해. 딱 그 일만 줄 거야. 대신 너희들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줄게. 못 믿겠으면 먼저 정보를 받아 가도
좋아. 너희가 아까 만난 돌팔이 의사가 사용했던 윤활유의 정체를 알고 싶지 않니?”
“그, 그건.”
눈앞의 그는 우리의 사생활을 전부 꿰뚫고 있다.
미소라는 어느새 다시 자리에 앉은 아루루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매정하게 버리고 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도망갈 길은 막혀버렸으니 미소라는 집어넣었던 의자를 다시 꺼내 앉아 상어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좋은 조건이다. 정탐이 뭐가 어려운가. 생존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본 그들이었다. 자신들의 팔다리도 살아남기 위해 멀쩡한 신체를 불법으로 개조한 것이다. 미소라는 계약서를 다시 보았다.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다들 결정이 끝난 모양이었다. 하아, 미소라는 한숨을 푹 쉬고 빈칸에 제 이름을 적었다. 계약서가 슉 사라졌다.
“다들 고마워. 이걸로 계약은 성립되고 조직은 꾸려졌어. 그 태블릿은 각자의 몫이니까 가져도 좋아.”
끝이다. 미소라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 한숨을 쉬었다. 츠카사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휘둘려서 당황했지? 괜찮아. 상어는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거로 유명하니까. 아마 너희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보다 더욱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가 말하는 일만 해준다면 말이야.”
“그럴까요...”
고개를 살짝 틀어 본 아루루는 어느새 래빗과 노는 중이었다. 래빗이 ‘우사핀 가면 3호 포즈!’ 등의 소리를 하며 괴상한 자세를 취할 때마다 신나서 따라 하고 있다. 아루루는 그러다 아! 하며 동작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조직을 만들었다고 했잖아. 그럼 조직 이름은 뭐야?”
그 말에 모두가 다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먼저 의견을 꺼낸 것은 래빗이었다.
“우사핀 히어로!”
“그 이름은 조금...”
난색을 보인 츠카사가 제시한 이름은 비밀조직회를 줄인 비조회. 상어는 어떤 이름이든 좋다고 했다.
미소라가 몸을 뒤로 빼고 손을 설레설레 젓자 차례는 자연스레 아루루에게 돌아갔다. 아루루는 잠시 생각하더니,
“프론티어는 어때?”
라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아루루와 시선을 마주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라는 뜻도 있지만, 앞만 떼어보면 front,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도 있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뜻을 덧붙인 상어가 확정을 지었다. 조직 『프론티어』가 창설되는 순간이었다.
뒷골목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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