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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도 봄의 향취는 옅었다. 처마마다 달린 등엔 벌레가 꾀지 않았다. 하나야기 카오루코는 대청에 걸터앉아 정자세를 꼿꼿이 유지했다. 밤바람이 서늘하게 훑고 지나갈 때마다 아직 다 피지 않은 벚꽃들이 차락댔다. 벚꽃의 향만은 아직 남아 맴돈다. 이조차도 언제까지려나. 하나야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릴 때만 해도 봄이 되면 장난삼아 귓가에 벚꽃 한 송이를 가지 째 꺾어다 귀에 꽂곤 했다. 그러곤 집에 갈 때 홱 던져놓고. 요즘 세상에서 그러면 어마어마한 사치라고 지탄을 받을 짓이다. 뭐 여하간, 어릴 땐 그랬다. 동네에 널린 것이 벚나무였으니.

순간 몸이 떨려온다. 손 끝이. 그리고 눈꺼풀이. 아직 열이 안 식은 탓이다. 아직도 춤의 열기가 몸 속을

뛰다닌다. 발걸음과 손놀림, 그 몸짓 하나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눈 앞에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다. 그녀는 다시 떨리는 오른손을 허벅지 아래에 살포시 밀어 넣고 누른다. 파들대는 오른 눈꺼풀도

눌러 닫아 꾹 누른다. 눈의 경련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손도 아마 곧 괜찮아질 것이다.

옆에 놓아둔 차는 아직 따뜻했다. 들어서 한 모금 마시니 향이 옅다. 아니 옅다기보단 이미 있던 향이

날아간 쪽이다. 이맛살이 확 우그러진다. 요정에서 내오는 차라는 건 다 이 모양이다. 차를 아끼는 것도 아끼는 거지만, 통을 연 다음 다 마실 때까지 보관 기간도 긴 편이니 향이 옅을 수 밖에. 그런데 이 정도 요정에서 합성 차라니. 차나무가 아직 뭔 콜라나무마냥 반 멸종한 것도 아닌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혀를 한 번 차 준다.

하나야기는 멍하니 하늘을 본다. 밤이라지만 도쿄의 밤하늘은 빛에 물들어 희부옇다. 하늘을 수놓는 비행차들의 항행등 사이로 별들은 사라진다. 이제 하늘에 보이는 옛 것은 달뿐이다. 별안간 들려오는 바스락대는 소리. 하나야기는 흠칫하고 옆을 돌아본다. 민트색 단발머리가 일렁인다. 무덤덤한 연녹색 눈동자가 생그라니 웃는다.

 달이 밝네요.

이런. 하나야기는 속으로 쓰게 웃고, 아무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인다. 죽는 건 질색인데요, 하고.

 

 

 

오늘은 아니라오

사이버펑크 합작 – 하나야기 카오루코

 

 

 

 간만이여유.

 그러게요.

다른 엔지니어들은 추레하게 면바지에 체크 남방 차림으로 비척대며 다녔지만 이 사람은 항시 깔끔한

바지정장 차림이었다. 그 덕택에 쇼 와중에 기자들에게도 자주 불려 다녔고. 지금은 하늘대고 심플한 흰 원피스에 블라우스, 그리고 분홍 가디건 차림이었다. 하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이 여자는 업무용 옷과 사생활용 옷은 무조건 가르는 그런 주의였다. 이름도 그랬다. 공문서에 쓰는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바깥에서는 언제나 엘이였다. 하나야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비척였다. 영 불편했다. 엘은 앉아서 박수를 두 번 쳤다. 곧 바퀴를 돌돌대면서 공기청정기 하나 만한 사이즈의 상자가 굴러왔다. 옻칠을 하고 자개를 박은 상자 아래에선 불빛들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접대용 로봇, 그러니까 신형 오토-컨시어지Auto-Concierge™가 작동중이란 뜻이었다.

 모히또.

뭔 요정에서 모히또냐 말하려는 순간 로봇은 음악을 튼다. 기계에선 옻칠과 옅은 윤활유 냄새가 났다.

느긋한 톤의 일본풍 소리를 흘리면서 아래에선 인디케이터 불빛들이 요란하게 춤을 춘다. 그러더니 잠시 후 상자의 교묘하게 숨겨진 문이 열리더니, 서랍이 자동으로 모히또 잔을 받쳐들고 열린다. 라임이나

생 민트 잎은 없지만 얼음은 있다. 세상에. 이젠 합성장치가 저 정도 사이즈까지 줄었나? 하나야기가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 동안 엘은 느긋하게 모히또를 한 모금 넘긴다. 그러곤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을 다시 내려둔다.

 합성 치곤 괜찮네요.

 미국 사람들은 왜들 그런데유.

 네?

 좀 다른 나라 왔음 말유, 으응? 그 나라 걸 먹구. 마시구. 그래야지 뭔 요정서 모히또를-

 수요가 있으니 기능도 있는 거 아닐까요?

 당연히 모히또야 만들겠쥬. 미제니. 거 저노무 쇳덩이는 말차 하나도 제대로 못 타던디!

 그거야 언제나 수정하면 되니까요. 알고리즘의 매력이죠.

기술쟁이들이란 언제나 저렇지. 하나야기는 속으로 이죽거린다. 기술자들에게는 이미 징그럽게 당해봤다. 모든 걸 숫자와 글줄 그리고 모터와 전선 몇 개로 해결할 수 있다 자신하는 멍청이들. 하나야기는 공연히 부채를 펴서 왼손에 쥐고 휘적대기 시작한다.

 어라.

 그 모습에 엘의 눈이 동그래진다.

 왼손으로 부치시네요.

 뭐 편한 손으로 하는 거 아니겄슈.

 오른 손은 깔고 앉고 계시고요.

 잠시의 침묵. 등골을 흐르는 식은땀.

 잠시 봐드릴까요?

엘이 호주머니에서 단말기를 펴내 펼쳐 든다. 하나야기의 얼굴이 파랗게 굳는다. 손을 숨기려 하지만

이미 엘의 단말기가 삑 하고 운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이거 텔레메트리는 무선으로 따는 거였다.

 역시. 손목 부분 기어가 살짝 과열된 상태였네요. 지금은 다시 정상범위 내지만.

엘은 억양 없는 말투로 화면을 훑어 내린다. 하나야기는 애써 이를 악다물었다.

 시간상으로 보면 경연 때네요. 지금은 괜찮나요?

 일 없슈.

 그래도 모르니 다음 주 체크업을 좀 당길까요?

 바쁜디. 다음주부턴 다시 공연이구.

 축 처진 쇳덩이 오른팔로 공연하는 것보단 낫겠죠.

하나야기는 최대한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오른 손목이 또 덜컥댄다. 엘은 계속 단말기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손목 기어 부품을 교체하는 것도 고려해보죠. 1만 시간 기준으로 잡아서 지금 7천 시간을 좀 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티탄 합금 기어로 바꿔보죠. 훨씬 가벼울 거고 더 오래 버티니까요. 안 그래도 세컨더리 PCB도 갈아야 하고, 전지도- 하나야기 씨? 하나야기 씨?

 하나야기 씨?

 야. 듣고 있으니 말 혀요.

그제서야 하나야기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기술적 단어가 쏟아지면 자꾸 정신이 멍해지곤 했다.

 여하간 이노무 몸뚱이, 내 돈으로 혀 넣었음 애저녁에 알그지 되부렸겄네.

 그러니까 스폰서쉽이란 게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 말은 좋네유. 하나야기는 속으로 혀를 찬다. 어느 미친 놈이 술 먹곤 객기 부린답시고 빗길에서 수동으로 운전하다 내 차에 들이박지만 않았어도. 그럼 그냥 이러구 살아야 하나보다 하는 순간 저 자가 정구지 색 머리를 하고 나타나서 공짜 시술을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몸에 쇳덩어리를 잇는다고 난리를 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재활기간 동안 후타바항이 성질머리를 다 받아낼 필요도 없고, 그 데이터를 죄다-

하나야기는 간신히 생각을 끊어냈다.

 그 스폰서십인지 먼지를 했으니 나가 이리 끌려 나오는 거 아니겄슈.

 춤 추실 때마다 비용은 추가로 드리잖아요. 게다가 이겼잖아요?

 아무리 내 데이타로 배웠다 혀두 쇳등이 상대론 아직 너끈항께. 안 그려유?

 그건 인정할게요. 둘 다 제 자식이지만 아직은 하나야기 씨 쪽의 컨트롤러가 더 좋으니까요.

 기판?

 아뇨.

엘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린다.

 뇌 말이에요 뇌.

 아항.

그러곤 둘 다 멍하니 하늘을 본다. 한 서너대쯤 비행차가 지나가고 나서야 엘은 입을 열었다.

 꽤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뭐가유?

 일본 무용을 AI가 학습해서 하나의 춤으로 만들어낸다.

 아하.

 다른 나라 춤도 되었을텐데, 실리콘밸리 남자들이란 다 그렇잖아요. 일본 물건이면 사족을 못 쓰고.

 하하하.

 그래도 오늘 동작은 꽤 흥미로웠어요.

 멈춰 서기 말이유?

 예. 유기적인 동작이 연속적으로 입력되다 그렇게 딱 멎어버리니까 순간 판단을 못 하고 비상 정지에 들어간 거니까요.

 

 허유, 누가 봄 내가 뭔 초능력이라두 써서 망가뜨린 줄 알겄네. 걍 미적으루 나가 더 우세혔다,

이럼 안돼유?

 저도 자존심이란 게 있으니까요.

엘은 쓰게 웃더니, 모히또 잔을 들고 일어섰다.

 더 안 놀다 가유?

 간만에 자연이나 즐기다 가게요.

 그러셔유.

 이런 자연은 샌프란에선 만금을 줘도 찾기가 힘들거든요 이제.

엘은 그러더니 모히또 잔을 건배하듯 들어 올리더니 허공에 대고 부딪히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하나야기는 다시 먼 산을 쳐다본다.

 야, 뭐하냐?

하나야기는 몸을 일으킨다. 짜리몽땅한 그림자 하나가 엘이 사라진 방향의 반대에서 나타나더니, 빛을 등지고 다가온다.

이번엔 반가운 손님이 온 모양이다.

후타바항은 안 자구 뭐혀유.

이스루기 후타바는 느긋하게 걸어왔다. 헐렁한 흰 유카타에다가 분홍색 겉옷을 슬쩍 어깨에 두른 것이

아무래도 자다 나온 모양이었다.

 자다가 나왔지. 네가 없길래.

그러면 그렇지. 하나야기는 속으로 쓰게 웃는다. 이스루기는 옆에 털푸덕 주저앉고, 로봇에게 라즈베리

소다를 시켰다. 주문한 음료는 바로 나왔다. 그걸 쭈욱 빨아마시고, 이스루기는 요란하게 트림을 한다.

어휴 드러브라, 하고 옆구리를 슬쩍 줴질러 준다. 끄떡도 안 한다.

 어휴. 간만에 비싼 밥 먹으니까 소화가 안 되네.

능청맞게 배를 두들기는 이스루기를 보면서 하나야기는 쓰게 웃는다. 어째 변하질 않네유.

 우리 집 밥두 매한가지인디.

 요정 밥은 이상하게 소화가 안 돼.

 신경이 곤두서서 아녀유? 왜, 지가 질까봐유?

 어차피 너 이길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왜?

 허유, 말이라도 고맙슈.

누가 먼저라 할 세 없이 둘은 키득거린다. 그렇게 실없이 웃고, 이스루기는 소다를 한 모금 또 넘긴다.

로봇들도 발전 많이 하긴 했어.

 첨엔 움직이기도 버겨워서리 춤추다 막 자빠지구 그렸는디.

 그래도 이젠 네 춤사위에 맞춰서 움직이기까지 하잖아. 뭐 여하간 센서 엄청 붙이고 돌렸다곤 하는데.

 뭐 그렇지 않겄슈? 내 몸짓을 보고 배운 녀석인디.

하나야기는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한 20년 있음 로봇한테 면허개전 내주게 생겼던데?

 센카류는 그런 거 없응께 알아서 떼다 가라 그려요.

 오우. 견제냐?

 견제할 게 뭐 있슈.

 오늘 춤사위만 봐도 말이야-

순간 하나야기의 몸이 굳는다. 멍하니 이스루기를 쳐다본 채 손을 뻗지도 접지도 못한 채. 이스루기는

쓰게 웃었다.

 내가 그걸 모르겠냐.

하나야기의 몸이 풀리더니 양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곤 구부정하게 숙인다. 고개가 살짝 땅으로 내려간다. 이스루기는 엉덩이를 들어 하나야기의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복숭아 냄새에 후추 냄새, 그리고 옅은 땀내음이 조심스레 풍겼다.

 미츠코냐?

 후타바항이 사준거유.

 겔랑 그거 무진장 비싸더라.

 프랑스 향수가 다 그렇쥬.

이스루기는 살짝 뻣뻣하게 팔을 하나야기의 어깨에 걸친다. 그러곤 슬쩍 끌어당겨 안는다.

 그렇게 확 멈추는 건 센카류에서 안 가르쳐주는 거잖아.

 그걸 어찌 알아유.

 당주 옆에서 춤사위 보고 산 세월이 얼마겠냐.

 그려요. 후타바항도 무대소녀니. 하나야기는 멋적게 웃는다.

 그렇게 한바퀴 돌아 솟구쳤다 확 멎어버리니까 그 멍청한 로봇은 뭘 할지도 모르던데.

이스루기는 웃는다. 옆을 바라본다. 하나야기의 얼굴이 굳어있다.

 왜 그래.

 그거 아마 버그유.

 응?

 버그라구유.

하나야기의 말문이 막힌다. 숨을 쉬고, 입을 우물대고.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한 마디씩을 끌어낸다.

 그거 말이유. 으응. 그 물건 있잖유? 갸는 계속 동작을 이어서 춤출 줄만 알아유. 그 뭔 소리냐 하믄,

갑자기 정지했을 때를 배운 적이 없다 이거유.

 프로그램을 잘못 짠 건가?

 그럴 수도 있쥬. 여하간 저건 나가 춤을 출 때 그 동작을 읽어서 다음 몸짓을 예견하는 것이니.

하나야기는 애써 웃는다. 소리 내어 웃어보지만 목소리에 도무지 힘이 없다.

 이젠 이런 야바위라도 안 씀 이기지두 못하는 모양이유.

 야 거 말이 심하다. 뭔 야바위야.

이스루기는 하나야기의 이마를 손끝으로 툭 친다. 힘이 없었나 머리가 휙 넘어갔다 돌아온다. 하나야기는 노려보지도 않는다. 이스루기는 한숨을 쉰다. 그러고 묻는다.

 그걸 처음부터 알았어?

하나야기가 도리질을 한다. 그럼 그렇지.

 잠시 동작을 끊을 때 자꾸 휘청대는 거 같아서리 한 번 해 봤는디 아니나 다를까 딱 그러대유.

 그럼 야바위가 아니라 전략이지.

 하여간 참 그러네유. 겨우 그런 야바위나 쳐서 이겨먹는 건 센카류가 아닌디.

 왜. 이김 된 거지.

 이런 쇳덩이 세상에 춤이 의미는 있을까유?

 춤 실력 이야기면 아직은 니가 더 나아.

 그럼 뭘 혀요. 곧 따라잡힐 것인디.

하나야기가 입을 비쭉거린다. 문득 손을 들어 올려본다. 유카타 소매 안쪽, 손목에 희미하게 실금이 보인다. 햇빛 아래에다 비춰봐도 안 보일 정도로 가는 선이지만, 하나야기의 눈에는 선하게 보인다. 당연하다. 이게 얼마나 비싼 눈인데. 문제가 생기면 그 선을 따라서 점검 패널을 열어서 부품만 빼내면 된다. 모듈화란 건 그런 거다. 문제가 생기면 몸의 1/4 정도는 바로 갈아 치울 수 있다. 아니 1/3이던가? 오른팔,

양쪽 눈, 귀, 오른 무릎 아래…음. 1/2와 1/3 사이인 모양이다. 여하간.

 왜. 쇳덩어리로 춤추면 네가 아닌 거 같아서?

 아직 2/3은 나요!

하나야기가 발끈해서 소리친다. 삽시간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엉겁결에 손으로 얼굴을 꾹 누른다.

오른손이 닿자 그 서늘함에 뺨이 식는다. 이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나머지도 전부 너야.

 그 말에 하나야기는 쓰게 웃는다.

 내 몸띵이 말여우? 이젠 꽂기만 함 바루 도라이바가 깔려서 인식이 된데유. 플러그. 에.

플러그 뭐시기인디.

 

 플러그 앤 플레이Plug & Play.

 

 마 여하간. 글구 드라이버가 안 잡힘 원격으루 그 뭐시여, 클라우드? 그걸로 업데이트, 으응 그려, 업데이 트두 해준답디다. 오…여하간 오 거스기 머스기.

 OTA 아냐? 그 뭐냐. 오버. 오버 뭔데…아 그래. 오버 더 에어Over The Air.

 후타바항은 그걸 다 기억혀유?

 요즘은 자동차나 바이크도 다 그렇게 나오잖냐.

 아니 여간, 뭔 정수기 필터마냥 갈아치우는 것두 나유?

 결국 네 몸이잖아? 장기이식이랑 다를 것도 없고.

 말은 고맙네유.

하나야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마침 버스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항법등이 사방에서

반짝인다. 하나야기는 예전에 호시미가 술자리에서 토했던 불쾌함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시대의 은하수! 옛 것을 추억하기엔 세상이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애써 웃어보지만 입꼬리는 굳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괜히 손가락으로 찔러 올려본다. 하나야기는 다시 입을 연다.

 그래두 말여라? 나 같은 춤꾼들두 이젠 하나미치花道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가 온 거유. 야바위도 한두 번이지.

 아직 너 쌩쌩한데 뭔 하나미치냐.

 언젠간 고것들이 나보다두 잘 추는 날이 올 터인디. 그 앞에서 허브적 해봐야 뭔 의미가 있겄슈?

 정수리에 쾅 하고 주먹이 떨어진다. 이스루기다. 은근 아프다.

 아 거 왜 쥐박아유!

 뭐야, 아펐어?

 아퍼유!

 정수리 쪽 티탄 합금으로 덮지 않았어 너?

 그래두 아픈 건 아퍼유!

냅다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고, 그대로 이스루기의 눈 앞에다 줴지른다. 정확하게 콩 하나 간격을 두고 멈춰선다. 이스루기는 질겁을 하고 뒤로 허우적대다 나자빠진다.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이스루기를 바라보면서, 하나야기는 속으로 휘파람을 분다. 정밀도 하나는 마음에 든다. 그 풀떼기색 머리카락이 세팅을 잘 해주긴 한 모양이다. 이스루기는 그제야 평정심을 되찾곤 버럭한다.

 야! 니가 그렇게 지름 진짜 죽어!

 여하간 나도 아펐는디!

 아 그래 그래 미안해!

이스루기는 대강 사과를 하자마자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러다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녀를 바라본다.

 여하간!

이스루기의 손이 쭉 뻗어나온다. 손가락 하나를 핀 채로, 하나야기의 콧잔등 앞에서 까딱거린다.

 너 춤은 왜 추냐?

 나가 좋아서 추쥬?

 그럼 계속 그러고 추면 되는 거 아냐?

 그런 거 누가 본다구-

 둘이나 보잖아. 나랑. 너랑.

등골이 서늘해진다. 아. 이런 감각은 꽤 간만이다. 하나야기 카오루코는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거에 새삼스레 감사해진다.

 그냥 춰. 저 놈들이 뭐라 하건 말건 너는 너고, 춤꾼이야.

하나야기는 딴지를 걸어본다.

 3년 전만 해두 버벅대던 쇳덩이가 이젠 나가 움직이는 것까지 읽는디.

 그럼 새 제자 하나 생기는 거지. 쇳덩이 제자.

 어으 숭혀라.

 사람처럼 춤추고 사람처럼 읽을 수 있음 그게 사람 아냐?

 그렇게도 보겄네유.

하나야기는 애써 고개를 들어본다. 하늘이 부옇다.

 이젠 기계가 죄다 이겨먹는 시대가 왔잖유?

 뭐 언젠간 그러겠지. 나나, 너나. 그런데 말이다?

이스루기는 좀 더 하나야기를 강하게 안는다.

 아직은 아니야.

이스루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 날이 오면 내려가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 깡통 앞에 가서 그러라고. 오늘은 아녀유, 오늘은 아닝께 집에 가서 기름칠이나 하슈, 하고.

 그러다 하나미치에서 내려갈 때 놓치면 다 후타바항 책임이유?

 괜찮아. 내가 책임질게.

 지금 내려가두 박수두 안 쳐줄걸유?

 그럼 박수 쳐줄 때까지 개겨.

 그럼 방석 날아와유.

그 말에 둘은 웃음을 터뜨린다. 폐부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내 전부 쏟아낸다.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리고, 허파가 허락할 때까지 웃는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요란하게 웃는다. 대체 얼마를 웃었을까.

하나야기가 조용해진다. 이스루기는 조용히 하나야기의 몸을 끌어안는다. 하나야기의 무게, 그리고

아래에 싸인 의수의 무게가 묵직하니 몸을 누른다. 팔 안에서 하나야기의 어깨가 조용히 떨린다. 기댄

어깻죽지에 물기가 스며든다. 이스루기는 아무 말없이 앉아있을 뿐이다. 이스루기는 하나야기의 머리가 자신의 머리와 닿을 때까지 그녀를 더 꾸욱 끌어안는다. 얇은 유카타 사이에서 따뜻함이 조금씩 넘어와 이스루기에게 닿는다. 그렇게 아직까지 몸을 떠는 애인을 안고, 이스루기는 하늘을 바라본다.

달이 참으로 밝다.

 달 참 밝다야.

이스루기의 말에 하나야기는 까르르 웃는다. 그녀가 맹한 소리로 답한다.

 죽기는 싫구, 같이 춤추기 좋은 달이네유.

 그래 그래.

이스루기는 큭큭대면서 하나야기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천의 감촉이 까슬하다. 다시 이스루기는 달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아래, 눈 앞의 벛나무를 바라본다. 방금 전보다 어째 꽃들이 더 피어난 착각이 든다. 바람이 분다. 벛나무가 몸을 떤다. 새 시대의 은하수 아래에서도 봄의 벚꽃은 여전히 춤춘다.

언제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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