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날은 눈이 내렸다. 미끄러운 빙판길 위를 멋모르고 걷다 넘어질 뻔한 여성은 짙은 남빛 머리칼이 흐뜨러진 것을 갈무리했다. 그에게는 손끝이 얼어붙을 듯한 추위가 낯설었다. 꼴사납게 금이 간 채로 방치되어있는 아스팔트부터,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표지판까지. 이 모든 풍경이 낯설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이 곳은 그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었다. 시즈하는 이런 풍경에 익숙해져야 했다.
낯선 이를 좋지 못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그는 적응력이 빠른 편이었으나, 마을 내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카르텔이 그를 유독 방해했다. 그들간의 유대를 더욱 다지기 위하여 다함께 쑥덕거릴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시즈하는 그 타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꽤나 갖은 노력을 했다. 웃는 낯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쿠키를 나누어주면 다음날 집앞에는 바스러진 쿠키 조각들이 굴러다녔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을 도와주면 그 노인과의 혼담이 오고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시즈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를 벗어나려 노력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그가 무엇을 해도 견고한 카르텔은 시즈하가 들어갈 틈새를 보여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도시를 그렸다. 사람들간의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하던 그곳이 차라리 나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그곳이 훨씬 좋았다. 그들은 기술의 발전과 편리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시즈하는 갑갑해진 마음을 달래려 산책을 나섰다. 마을 한구석에는 버려진 전자기기들을 쌓아두는 곳이 있었다. 그는 종종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곤 했다. 이번에도 한숨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의미없는 철조망 사이를 지나면 폐안드로이드와 온갖 자재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계속해서 걷다보면 멀리 도시가 보였다. 시즈하는 그 즈음에 폐차의 본네트 위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에 하얀 입김이 찬찬히 흩어 사라진다.
시즈하의 손끝이 빳빳하게 굳어갈 즈음에 저녁노을이 내렸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지. 도시의 풍경을 뒤로하고 굳은 몸을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쿵, 하는 소리가 시즈하의 귀에 박혔다. 폐안드로이드가 쌓여있던 곳에서 무언가 떨어진 게 분명했다. 그가 주변을 살피다, 분홍빛 머리카락에 시선이 닿았다. 토끼모양 머리끈으로 양쪽 위를 묶은 걸 보니 자식이 없는 가족이 안드로이드를 사서 허전함을 달랬던 모양이다. 시즈하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나, 더 잘 할게."
음성 송출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치직거리는 소리와 전기가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진 말이 시즈하의 발을 붙잡았다. 내가 더 잘 할게. 그 소리가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두고가지 말라는 말이 따라온 듯 했다. 시즈하는 제 눈앞이 흐려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버려진 안드로이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그 손을 잡는 저 자신을 알 수 없었다. 버려진 안드로이드일 뿐인데. 그 쓸모를 다하지 못해 버려졌을 뿐인데.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이렇게나 멀쩡한데. 시즈하는 떨리는 손으로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쓰다듬어보았다. 닿아온 온기에 반응한 것인지 안드로이드는 삐걱이는 고개를 돌려 시즈하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저 옷에 박음질되어있는 이름을 속삭였다.
"라라핀."
"나, 데려가 줘. 잘 할 수 있으니까. 응?"
무엇을 시킬 줄 알고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지. 감정이 없는 안드로이드임이 당연한데도 시즈하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즈하는 라라핀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라라핀을 데려온 그날 밤, 누군가 거세게 현관문을 두들겼다. 잠이 필요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 소리에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나는 라라핀을 도닥여주고는, 시즈하는 현관문을 열었다. 집주인이었다.
그는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는데, 시즈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젠 어디서 로봇까지 주워왔다면서? 나는 당신 하는 짓 더 못 참아주겠으니까, 당장 나가. 남의 집세 떨어뜨릴 일 있어?"
시즈하는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대로 토해버릴 것만 같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번달 안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뒤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허망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시즈하의 손을 붙잡는 게 있었다.
"떠나자, 시즈하."
라라핀. 어디로? 나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해? 시즈하가 떠나왔던 도시로? 그 순간에 시즈하는 도시를 어째서 떠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다른 마을로? 다시 도시로?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 별을 떠나서 다른 별로? 다른 우주로? 갈 곳을 잃은 그들은 그 어디를 떠돌아야 할까. 애초에 그들은 어째서 떠돌기 시작했을까.
그 해답은,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들의 우주 너머, 액정으로 지켜보는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이상. 안드로이드 시즈하와 라라핀의 감정 변화 관찰 실험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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